[허찬국의 세계경제] ‘최저임금’이 급한 게 아니다

입력 2018-07-1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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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고용 성적표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향후 경제 상황이 상당히 나빠질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으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일자리 정부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라는 실험적 조치에 힘입어 올 상반기 상당히 부실한 성적표를 받으며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등 어정쩡한 변명을 늘어놓던 청와대가 경제 참모진을 개편하며 책임론을 일단락 지었다.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며칠 전 인도에서의 대통령과 삼성 총수와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이제는 정부가 달라졌으며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연출도, 경제정책의 방향이 ‘소득주도 성장’에서 ‘△△성장’으로 가야 한다는 논객들의 시론도 구체성이나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소득이 구약성서의 ‘만나’처럼 뜬금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닌데, “소득이 성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논리 자체가 그럴싸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선거용이었던 것처럼 다른 종류의 성장론도 실속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고용 악화가 추세적인 것이어서, 여러 요인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것으로 보여 정부도 대기업들도 이를 돌리기에 역부족이다.

우리의 양대 교역국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느린 동작으로 시작되며 마치 납량(納凉) 공포영화의 도입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런데 전쟁 당사자들은 큰 내수 시장을 보유하고 있어 대외 부문의 악재를 완화하는 장치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전기차 제조사 테슬러는 국내 시장에서 팔 차는 미국에서 만들고, 관세로 수출이 어려워진 중국에서 팔 차는 중국에서 만들면 된다. 두 곳 모두 시장이 커 생산이 분산되어도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고 이에 따라 원가를 낮게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수 시장이 크지 않은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외국의 큰 시장을 상대로 경제를 유지해온 우리는 고래끼리의 싸움으로 이들 시장 접근이 어려워지면 내수 시장이 충분치 않아 충격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수출이 어려워지면 국내에서 수출용 차를 만들던 한국 기업은 물량을 싸들고 미국이든, 중국이든 나가서 만들 수밖에 없다.

당분간 우리 경제의 앞길은 오르막이다. 경제 여건이 위중해질 수 있다. 정책 입안자들은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던 조선업이나 자동차 부문의 사정이 다시 크게 악화하는 것을 상상도 하기 싫을 것이다. 유통, 음식업 등 서비스 산업의 경우 정부의 통제 때문이 아니라 국내 사정이 나빠져 중국 방문객이 다시 크게 줄어드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의 태풍이 몰아쳤을 때 배수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해 동네가 물바다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 우선이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가동하도록 해야 한다. 향후 실업이 늘고 취약 계층이 빠르게 증가하면 이들에 대한 지출도 같은 추세로 늘 수 있다. 필요한 곳이니 정부 지출이 느는 것은 당연하다. 이럴 경우 그간 추진되던 새로운 분야로의 복지 지출 확대는 그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분야 취업자가 3만 명 넘게 줄면서 작년 12월 이후 7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오죽했으면 7만 곳가량의 편의점 주인들이 들고일어나 최저임금 인상에 항의하는 회견을 하겠는가. 경제가 나빠지면 일자리 있는 사람의 사정을 개선하는 것보다 일자리를 잃거나 없는 사람들이 더 걱정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당장 대비해야 할 사안들과 거리가 멀다. 불필요한 회의를 열어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요즘 짜증 나는 뉴스거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 아쉽지만 작년에 올린 것도 있고 하니 위원회 위원님들께 당분간 쉬시라 권하고 싶다. 몇 년 후 경제가 안정되어 논란거리가 줄었을 때 미루어 두었던 일을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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