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 주차된 낯선 자동차 한 대를 보았다. 살고 있는 곳이 재개발이 예정된, 오래된 단독주택 밀집구역인지라 늘 주차 문제로 주민들의 신경이 날카로웠다. 집 대문 앞에 ‘주차금지’라고 휘갈겨 쓴 입간판이나 양동이를 내놓은 경우는 애교에 속하고, 어떤 집 주인은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돌덩이를 가져다 놓기도 했다.
차 앞부분이 대문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양손에 들고 있는 비닐봉지를 모두 내려놓아야만 했다. 마침 초복이었다.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을 위해 낙지와 전복과 커다란 무를 사서 다른 날보다 서둘러 퇴근한 길이었다. 이놈으로 연포탕을 끓여줘야지. 낙지는 왜 한 마리에 칠천 원씩이나 하는 걸까. 소고기를 넣으면 국물이 더 진해질 텐데… 마트에서 할인하는 소고기 팩을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그냥 돌아오는 길이었다. 소고기까지 샀으면 오만 원은 넘었을 텐데… 내가 학습지 교사 하면서 버는 돈은 아이 한 명당 한 달에 삼만 원꼴이었다. 오십 명의 아이들을 달래고 윽박지르고 꼬셔가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백오십만 원 남짓. 그 돈이 남편과 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한 달 생활비다. 반찬은 늘 거기에서 거기고, 아이 신발은 고르고 골라 언제나 매대에서만 샀다. 내 속옷을 사본 게 언제 일인지,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가 무엇인지, 그런 것은 따져보지 않고 살았다. 이제 삼 년만 더, 삼 년만 더 전세자금 대출을 갚으면 이 동네를 떠나 작은 아파트 전세를 알아볼 수 있다. 한과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의 월급이 숨 돌릴 틈 없이 바로 은행으로 빠져나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 그래도 초복이니까… 소고기 대신 전복을 넣어도 국물은 진해질 것이다. 이 연포탕을 먹고 여름을 나면 또 그만큼 원금도 사라질 것이다. 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남편은 정말 왜 그랬던 것일까?
집으로 들어와 보니, 의외로 남편이 퇴근해서 TV를 보고 있었다. 공장에 무슨 일 있었냐고 물으니, 기계 수리 문제로 단축 근무했다고, 내일도 쉬게 되었다고 얼버무려서 그냥 그런 줄 알았다. 더우니까 기계도 무리가 오나 봐. 남편은 무심한 듯 그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전에 없이 부엌일을 도왔다. 무를 썰고, 전복을 손질했다. 아이는 아직 영어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아, 제법 신혼 때 기분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툭, 남편이 말을 꺼냈다.
“집 앞에 있는 자동차 봤어?”
“아우, 그러게. 누가 예의도 없이 그렇게 대문 앞에 바싹 대놓았더라구.”
나는 풋고추를 썰면서 말했다.
“그거, 내가 샀어.”
남편은 마치 라면이나 아이스크림을 샀다고 말하는 것처럼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뭘 샀다고?”
“우리 집 앞에 있는 차. 내가 그냥 샀어. 할부로.”
나는 부엌칼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농담인가, 무슨 장난인가, 생각했지만 차가 분명 집 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마냥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한물간 모델이라구 싸게 나왔더라구. 프로모션으로 많이 깎아주고…”
“그래서 얼만데?”
“72개월 할부. 한 달에 42만 원씩.”
거기까지만 듣고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또각또각, 남편이 무를 써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이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낙지를 지금 넣어야 하는데, 그래야 국물이 잘 우러날 텐데… 자꾸 그 생각이 나서 신경질이 더 났다. 하지만, 나는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아이가 등교하자마자 나는 남편을 앞세워 자동차 대리점으로 향했다.
“꼭 그래야겠어?”
남편은 자동차 앞에서 내 얼굴을 보면서 물었다.
“안 그러면? 무슨 수로 6년 동안 40만 원씩 낼 건데? 4만 원이 아니고, 40만 원이라고!”
“내가 알아서 하면 되잖아. 잔업도 더 하고, 정 안 되면 밤에 다른 알바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남편은 평소에도 체력이 약해서 밤 10시만 되면 세상 모르게 잠드는 사람이었다. 이 와중에 병수중까지 들게 할 작정인가… 그리고,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자동차가 있어야 한단 말인가! 자동차를 위해서 잔업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자동차가 뭐? 자동차가 뭐 상전인가? 자동차가 뭐 돌아가신 조상님이야? 조상님한테 그러면 효자라는 소리라도 듣지…
나는 단호했다. 계약 취소가 안 될 거라고 남편이 말했지만, 정 그러면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되팔 생각을 먹었다.
“지난주에 있잖아…”
신호등 때문에 차가 멈췄을 때, 남편이 여전히 앞 유리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 끝나서 집으로 오려고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이상하게 거기 있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거야.”
나는 아무 말 없이 남편의 말을 듣기만 했다.
“사람들이 왜 보나, 했더니… 날벌레들이 온통 내 주위로만 몰려들어서, 그게 신기해서 쳐다보는 거 같더라구. 이게 왜 그러지, 왜 그러지, 했는데… 생각해 보니 엿기름 때문이더라구. 우리 공장에서 쓰는 엿기름…”
나는 계속 말하지 않았다.
“그냥 그 날벌레들을 손으로 계속 쫓다가, 길 건너편에 있는 자동차 대리점으로 쑥 들어가 버렸어. 날벌레가 좀 없어졌으면 해서…”
남편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닫았다. 그렇게 들어간 대리점에서, 남편은 아마 계약서를 썼겠지… 갑자기 대리점으로 들어온 자기 자신이 무안해서… 나는 더 단호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새 차에서는 시큼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 월 1회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