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자본도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입력 2018-07-2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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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활동에는 두 개의 중심축이 있다. 하나는 창작이고, 다른 하나는 수집하고 감상하는 컬렉션이다. 딱히 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 제작을 제1의 창작, 컬렉션을 제2의 창작으로 부르기도 한다. 미술 활동이 창작에서 시작되고 컬렉션을 통해 완성된다고 하는 것도 내용인즉 같은 의미다.

그 속뜻을 경제 용어를 약간 섞어 풀어보면, “시장거래의 경제적인 효율이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온 것처럼, 미술 문화도 창작(공급)과 컬렉션(수요)이 시장에서 만나 가치를 공유하고 소통할 때 꽃을 피운다”고 할 수 있을까? 수요가 공급을 창조한다는 말이 있듯, 이 해석에는 컬렉션이 창작을 견인할 때 미술 문화는 융성하고 발전한다는 의미가 행간에 담겨 있다.

그러나 정작 미술 문화가 꽃을 피우기까지 생육을 책임져 온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국가든 개인이든 축적된 자본에서 창출되는 경제력이었다. 오늘날 높게 평가받는 미술품을 비롯해서 세계가 찬탄하는 문화유산의 대부분이 절대왕조시대, 권력과 자본을 가진 상류층의 후원과 주문으로 만들어지고 수집 보존되어온 결과물이 아니던가? 미술이 꽃이라면, 자본은 자양분이었다.

현대로 넘어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정치 권력과 경제력이 시민계급으로 폭넓게 분산되는 가운데 컬렉션 문화가 사회 저변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의 중심 동력은 미술 시장이었다. 시장은 거래비용을 낮추었고, 미술품의 상업적인 거래를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지금처럼 컬렉션이 보편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시장의 절대적인 역할이 있었다.

그럼에도 자본과 미술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는 별 변함이 없다. 자본적인 가치가 여타 사회적인 가치를 압도하는 오늘날 그 관계는 오히려 더 공고해지고 있다. 미술품 수요는 소득(income)보다는 부(wealth)에 의해 결정되고, 따라서 생산과 소득이 중심변수가 되어 움직이는 일반적인 경제와는 다른 흐름을 보이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흔히들 자본에는 확장적인 운동 속성이 있다고 한다. 그건 아마도 이윤 추구와 자본 축적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이겠지만, 그래선지 자본에는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하는 경제 논리, 차가움 등의 단어가 어울린다. 반면 사람들은 미술을 자유롭고 감성적이며 따뜻한 느낌으로 인식한다. 참고로 이 둘을 감정과 생각의 스펙트럼에 위치시켜 보면, 장담컨대 양 극단의 대척점에 자리하게 될 것이다. 정서적, 이념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어느 누구 앞에서도 냉정하고 손익을 따지는 자본이 미술품 앞에서는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차가운 자본에 숨겨진 내면의 따뜻함 때문일까? 아니면 미술에 대한 일말의 부채의식 때문일까? 아무튼 아름다움 앞에서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자본이 있어 인류의 미술 문화는 꽃을 피웠다. 역설이라면 역설이고, 역설치고는 얄궂은 역설이다.

미술의 세계에는 그 역설이 역설이기를 거부하는 무엇이 있다. 바로 컬렉션의 힘이다. 컬렉션, 그것은 자본이 차가운 이성의 틀을 깨고 따뜻한 감성으로, 때로는 ‘지독한 사랑(酷愛·혹애)’의 열병을 앓으면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다. 그 사랑은 일방적이고, 그 여정은 황홀하다. 그곳에는 오직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몰입하는 순수함이 자리한다. 자신의 영혼을 흔들며 유혹하는 명품을 앞에 두고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 본능과 욕망이 꿈틀거린다. 욕망은 충족되어야 하는 것,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멀어 보이던 미술과 자본은 그렇게 만나는 것이다.

나는 그 만남, 컬렉션의 현장에서 코시모 메디치(Cosimo Medici, 1389∼1464)와 폴 게티(P. Getty, 1892∼1976)를 떠올린다. 돈을 모으는 데는 그 누구보다 지독했던 메디치와 게티. 그들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자본과 미술이 컬렉션의 장(場)에서 만나 화해하고 소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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