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잡가 중 ‘곰보타령’이라는 노래가 있다. 여러 물고기를 나열하면서 익살맞은 노랫말을 이어나가는데, 그중 “뛴다 뛴다 어룡소룡(魚龍小龍) 다 뛰어넘어 자빠 동그라지고 영의정 고래 좌의정 숭어 우의정 민어”라는 대목이 나온다. 물고기 중에서 으뜸가는 물고기가 고래, 숭어, 민어라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민어는 조선 사람들이 먹는 물고기로 첫손가락에 꼽혔고 그 덕분에 민어(民魚), 즉 ‘백성의 고기’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 국민 생선이었던 것이다.
백성의 고기인 만큼 민어는 궁중에서부터 민간까지 쓰임새가 많아 요리 방식도 다양했다. 회, 탕, 구이, 조림, 찜, 어채, 포, 전유어는 기본이며 어만두나 순대의 재료로도 사용했다. 껍질도 말려서 먹거나 날 껍질로 쌈을 싸서 먹기도 한다. 민어알은 숭어알과 함께 어란(魚卵)의 주요 재료다.
민어 부레는 회로 먹기도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용도가 따로 있었다. 바로 접착제다. 민어 부레는 어교(魚膠)의 재료로는 최상품에 속했다. “민어가 천 냥이면 부레가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어 부레는 활 제작이나 목공예의 중요한 접착제로 사용했다. 이렇게 민어는 쓰임새가 많아 “민어는 비늘밖에 버릴 것이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요즘 민어는 참조기나 명태와 마찬가지로 남획과 환경 변화로 인해 그 어획량이 줄어들어 고급 생선의 반열에 올라섰다. 당연히 값도 상당히 비싸다. 횟집에서 살아 있는 민어를 판다고도 하나 그것은 중국 수입산 활어(活魚)인 홍민어(점성어)다. 국산 민어와는 완전히 다른 물고기인 것이다. 민어는 잡으면 바로 죽기 때문에 활어 상태의 민어는 무조건 가짜라고 생각하면 된다.
◇민어찜이 일품, 보신탕은 삼품이라=민어는 여름에 특히 각광받는다. “복더위에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어는 여름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았고, 194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지방 중류층 사람들은 민어찜과 민어탕으로 복더위를 달랬다. 평생 음식과 풍류를 즐기며 살았던 이용기(李用基, 1870∼1933?)는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 한흥서림)’에서 민어는 6월 그믐 전에 잡힌 것이 가장 맛이 좋다고 했다. 음력 6월 민어가 맛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민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인 젓새우가 6월에 가장 살찌기 때문이다(6월에 잡힌 새우로 담그는 ‘육젓’은 특상품 새우젓이며 일반 새우젓에 비해 2~3배 가격이 높다).
음력 6월, 양력으로는 7월, 8월이 제철인 민어를 잘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서울에도 민어 전문점이 꽤 있고, 목포에도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민어집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민어를 제대로 먹으려면 임자도로 가야 한다. 임자도는 20세기 초에는 500여 척의 민어배가 몰려 민어 파시(波市)가 섰던 곳이다. 지금은 그 옛 명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민어 하면 임자도다.
임자도로 민어 먹으러 가자는 제안에 문인팀 6명이 결성되었다. 황동규·홍신선·김윤배·김명인 시인, 이숭원·하응백 문학평론가. 이들은 사실 20여 년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별 목적 없이 함께 국내 여행을 자주 다녔다. 꽃구경도 하고 절구경도 하면서 맛난 음식도 먹었다. 이번에는 ‘민어’라는 특별한 목적이 하나 추가되었다.
◇문인들, 그 맛과 술을 찾아 임자도로=서해안고속국도를 타고 함평JC에서 무안광주고속국도를 갈아타고 북무안IC에서 빠져나와 지도읍 쪽으로 달린다. 길가는 구릉지대의 연속이다. 평야도 산지도 아닌 이색적인 풍경에 무화과나무가 지천이다. 지도읍을 지나 점암선착장에 도착하니 임자도행 배가 곧 출발한단다. 차를 싣고 탈 수 있는 큰 배다. 육지와 임자도를 연결하는 현수교 공사가 한창이다. 2020년 완공 예정이란다.
모두 임자도가 초행인 시인들은 다리가 놓이기 전 임자도에 온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다리가 놓이면 편리한 대신 망가지는 것도 많음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육지와 섬 사이를 흐르는 조류는 조금 때임에도 불구하고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세차고 거칠다. 배는 임자도 진리항에 15분 만에 도착한다.
임자도는 단독 면이니만큼 큰 섬이다. 차로 한 10분가량 달리니 고운 모래 해변에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난다. 대광해수욕장이다. 섬이라 그런지 해수욕객은 하나도 없고 앳된 해경 두 명이 바다를 지킨다. 좌측으로 보이는 섬이 민어 파시가 열려 서울의 시장보다 더 복잡했다던 그 유명했던 타리섬이다. 잠시 바닷가에서 풍경을 감상한다. 도시는 연일 불볕더위지만, 바닷가는 바닷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그늘에만 있으면 그다지 덥지 않다.
예약을 해둔 곳은 해수욕장 입구에 자리 잡은 ‘편안한 횟집(대표:김미옥, 061-275-2828)’. 8kg짜리 수놈으로 장만해 놓았단다. 민어는 수놈이 맛있다. 암놈은 알로 영양이 다 가서 맛이 덜하단다. 횟집에 자리를 잡고 식탁에 앉자마자 술부터 잔에 따르고 한 잔씩 한다. 이윽고 차례차례 음식이 나온다. 먼저 나온 것은 우럭과 양태구이와 거북손과 자연산 홍합과 가리비찜. 이것으로도 훌륭한 안주다.
이어서 보기에도 거창해서 바로 입이 딱 벌어지는, 잠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민어회 두 접시와 민어뱃살과 부레회 두 접시가 나온다. 뱃살과 부레는 참기름 소금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누구 할 것 없이 뱃살과 부레에 젓가락이 먼저 간다. 참기름을 듬뿍 묻혀, 소금은 조금 발라 한 입 먹는다. 일행은 잠시 말이 없다. 바로 이 맛이다. 복더위에 천리 길을 허위허위 달려온 것이 바로 이 민어 뱃살, 부레 한 점의 그 고소한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다.
◇노을과 술에 물든 노시인의 얼굴=김미옥 대표는 민어는 7kg 이상이 되어야 맛이 ‘약하지 않다’고 한다. 그 밑으로는 맛이 약하단다. 이 저녁, 좋은 곳에서, 좋은 벗들과, 좋은 술과, 좋은 안주로 만찬을 즐긴다. 노을빛이 창으로 스며들어와 노시인의 얼굴을 물들인다. 혹은 술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건배와 즐거운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부레와 뱃살 접시가 동이 난다.
한 접시가 더 나오고, 민어전이 두 접시 나온다. 민어전 또한 고소하고 부드럽다. 어떤 생선전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맛이다. 결국 민어회가 남아 전을 더 부쳐 달라고 한다.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기 어려워졌을 때 민어 매운탕이 나온다. 전라도 음식 솜씨가 어디 가랴. 게다가 민어가 식재료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민어를 성대히 먹고, 일행들은 밤 해변을 잠시 산책하다가 남은 민어전을 싸들고 숙소로 들어간다. 젊은 날의 여행은 왁자지껄한 음주와 광휘(光輝)의 분주함이 있었지만, 노년의 여행은 고즈넉한 속삭임과 편안한 휴식이 있다.
다음 날 아침, 같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민어 머리와 뼈를 푹 고고, 민어 내장을 썰어 넣은 민어곰국이다. 4시간 이상을 고았다고 한다. 국물 맛이 진하고 부드럽고 달다. 아! 이래서 복달임으로 민어를 첫째로 쳤구나 하는 감탄사가 바로 나온다. 큰 민어가 아니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뼛속 깊은 맛이다. 많은 음식을 섭렵하였으면서도, 거의 모든 음식을 차별하지 않는 황동규 시인도 이 국물 맛에는 감탄을 한다.
조선 중기 시인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민어를 이렇게 노래했다.
입이 크기는 농어와 닮았는데
비늘은 농어보다 조금 크다네
피부는 풍성한 살로 채워졌고
창자는 속현을 가득 안은 듯
솥에 끓이면 탕이 맛있지만
회를 치기에는 좋지 않아라
보시라 건조시킨 뒤에는
밥 먹을 때 손이 먼저 가리라
이응희 역시 풍성한 민어의 살, 끓인 탕, 민어 자반에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속현을 가득 안았다고 한 것은 민어 부레가 거문고와 같은 악기를 만들 때 접착제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다만 회치기에 좋지 않다고 한 것은 당시의 냉장 기술로는 선어(鮮魚) 보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임자도를 벗어나는 배 위에서 현대의 시인들은 조금 다른 말씀을 한다.
“이렇게 풍성하게 먹기는 처음이네. 민어, 이번 생에 이렇게 또 먹을 수 있을까?”
문학평론가·(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