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철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전국의 강과 바다와 계곡으로 사람이 몰리고 인천공항은 외국으로 피서 떠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피서는 ‘避暑’라고 쓰며 각 글자는 ‘피할 피’, ‘더울 서’라고 훈독한다. 더위는 피하는 것이 가능하다. 깊은 산 맑은 계곡으로 들어가 옥이 구르듯이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거나 해수욕장으로 달려가 바닷물에 풍덩 몸을 던지면 충분히 더위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추위는 따뜻한 방 외에 자연 속에서는 달리 피할 곳이 없다. 참고 견뎌야 한다. 그래서 ‘피한(避寒)’이라는 말은 없고 대신 ‘내한(耐寒)’이라는 말이 있는데 ‘견딜 내(耐)’와 ‘추울 한(寒)’을 쓴다. 더위는 피할 수 있지만 추위는 견뎌야 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가난한 사람 살기에는 겨울보다는 여름이 훨씬 낫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올여름 더위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은 피서할 여유가 없어서 더위도 피하지 못하고 견디며 살아야 하는데 올여름 더위는 가난한 사람이 견디기에는 너무 혹심하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때이다.
避暑 대신 ‘소하(消夏)’라는 말을 쓰며 여름을 난 사람들도 있다. ‘사라질 소(消)’ 자를 쓰는 消夏는 ‘여름을 사라지게 한다, 여름을 소비한다’는 뜻이다. 옛 중국사람, 특히 명나라·청나라 때 사람들은 여름이면 친구들과 함께 고서화나 도자기 등을 감상하며 목록을 작성하고 감상문을 쓰는 것으로 여름을 소비하곤 했는데 이런 신선놀음을 ‘消夏’라고 했다.
이렇게 여름을 지내면서 쓴 감상문을 모아 ‘소하기(消夏記)’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기도 했다. 청나라 사람 오영광(吳榮光)의 ‘신축소하기(辛丑消夏記)’, 손승택(孫承澤)의 ‘경자소하기(庚子銷夏記)’, 고사기(高士奇)의 ‘강촌소하록(江村銷夏錄)’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밖으로 나가려고만 하지 말고 이런 취미생활로 여름을 소비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