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은 물가 잣대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입력 2018-07-3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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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현 자본금융 전문기자

#1. 앞으로 농산물가격은 공급량 축소의 영향으로 상승세를 보이겠으며 가격회복 과정에서 기상불순 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승 시기는 장마, 태풍 등으로 기상 여건이 악화하는 하절기 중에 집중될 전망이며 배추, 상추, 시금치 등 엽채류 가격이 오름세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금년 하반기에는 엘니뇨 발생 확률이 높게 예보되는 등 기상불순에 의한 가격 불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 2014년 7월 31일 한국은행 인플레이션 보고서 발췌

#2. 관리물가는 국제적으로 통일된 정의가 없고 공식 통계를 편제하는 국가도 제한적이지만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거시경제적 파급 영향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략) 최근 들어서는 저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관리물가로부터 비롯된 의도치 않은 물가하방압력이 인플레이션을 더욱 둔화시키고 있으며 기조적 물가흐름의 판단에도 교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2018년 7월 29일 한국은행(BOK) 이슈노트 발췌

그리스 로마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길 가는 나그네를 붙잡아 자기 집 쇠 침대에 눕히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남은 다리나 머리를 잘라 죽였다. 반대로 키가 작으면 사지를 억지로 늘려 죽였다.

2014년 상반기와 2018년 상반기 소비자물가 흐름이 데자뷔다. 이 기간 소비자물가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4% 상승하며 1%대 중반의 낮은 오름세를 지속했다.

반면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는 낮은 물가 요인을 예년 수준을 하회하는 농산물가격 오름세에서 찾았고, 지금은 용어도 생소한 관리물가(Administered prices)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올 2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와 올 4월 수정경제전망 발표까지만 해도 관리물가를 규제물가로 칭한 바 있다. ‘규제물가’라는 용어가 다소 과격해 이번부터 ‘관리물가’로 용어를 순화해 쓰기로 했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2014년에는 엘니뇨가 발생한 2000년대 중반 국내 농산물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 예를 들며 향후 소비자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는 규제물가만 아니라면 소비자물가는 올 상반기 중 1.9%, 올 2분기(4~6월) 중 2.2%를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규제물가만 아니었으면 한은의 물가안정목표치 2.0%를 이미 넘긴 것이다.

한편 비슷한 개념으로 공공요금이라는 용어도 사용 중이다. 2015년 7월 인플레이션보고서에서 ‘공공요금의 현황 및 평가’라는 이슈 분석으로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은 이달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도 나온다. 여기서는 2010년 후 소비자물가 상승률 하락의 한 요인으로 공공요금 인하를 꼽는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전 3.7%이던 공공물가 상승률은 위기 후 교육·보건·교통 등을 중심으로 낮아지면서 1.3% 상승에 그쳤다. 이는 서비스물가 상승률을 1.0%포인트 정도 둔화시켰고, 전체 소비자물가를 0.6%포인트가량 낮췄다고 봤다. 아울러 7월 도시가스 요금 및 우편요금 인상과 올 하반기 상하수도 요금 및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시내버스·지하철요금 인상 논의 등을 들어 올 하반기 이후 서비스물가 오름세가 점차 확대될 것이라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한은은 2016년 7월과 그해 10월 낮은 물가를 이유로 총재가 직접 나서 물가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었다. 2016년부터 3년간 적용하는 물가안정목표 설정 시 6개월 연속 물가안정 목표치를 0.5%포인트 벗어나면 총재가 직접 나서 그 원인 등을 설명하는 설명 책임을 도입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는 소비자물가 하락의 주된 요인을 낮은 국제유가에서 찾았다.

한은법 제1조 목적조항에는 ‘물가안정을 도모’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은은 중기적으로 달성할 물가목표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해 집행해야 한다. 이 물가안정의 주된 지표가 소비자물가다.

한은은 물가가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그 이유를 분석하고 대응할 책무가 있다. 다만 그 원인을 기상 탓, 유가 탓,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프로크루스테스가 지나가는 사람의 키를 자르거나 늘려서 침대(물가목표치) 크기에 맞추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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