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의 그림자 노동上]죽음 부르는 실적, 한 해 은행원 6명 목숨 앗았다

입력 2018-08-07 10:33 수정 2018-08-0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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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과로사 등 5년간 31명 사망…10년간 산재 160건

[편집자주]숫자를 추구하고 숫자로 기억되는 곳, 바로 은행이다. 6조6609억 원. 올해 상반기 6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IBK기업은행)의 당기 순이익이다. 저마다 '영업1등'을 목표로 내세운 결과물이다. 평균 연봉 1억 원 육박. 은행원에 대한 탐욕적 색채를 입힌 불편한 이름표다. 이러한 이름표로 취업 준비생은 물론 대다수 직장인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리딩뱅크’를 향한 과도한 업무와 끝없는 실적 경쟁에 목숨을 잃는 은행원이 있다. 고액 연봉 꼬리표는 은행 직원들의 노동을 가벼이 취급하고, 그들의 과로를 돈과 등가교환한 것처럼 간주하게 했다. 하지만 높은 임금도 법을 넘나들고 인간의 존엄을 상실한 노동을 정당화하긴 어렵다. ‘이투데이’가 삶을 잃거나 포기하는 은행원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문제와 해법을 고민한다.

(근로복지공단)
(근로복지공단)

“기업금융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업체를 개발하고 영업점과 협업하는 것이 너무 큰 압박이다. 싫으면 내가 떠나면 된다.”

꽃피는 5월, 한 시중은행 지역영업그룹 소속 수석 차장 A 씨는 이 말을 비망록에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 씨는 새로운 팀으로 갑작스럽게 옮긴 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노조에 따르면 그는 상사로부터 스터디 그룹 운영 등 고유 업무와 무관한 지시를 계속 받았다고 한다. 매주 실적을 보고하는 등 일부 실적 압박도 발견됐다. 실적 압박에, 또는 과로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A 씨만이 아니다.

7일 이투데이가 근로복지공단에서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IBK기업은행 등 시중은행 6곳의 유족급여 신청 현황을 파악한 결과,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31명이 사망, 유족 급여(산업재해)를 신청했다. 한 해 평균 6명꼴이다.

특히 ‘과로사’로 볼 수 있는 뇌혈관·심장 질환 신청 건수가 각각 8건, 10건 등 총 18건으로 가장 많았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아 숨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 신청한 건수는 4건이다. 이밖에 △교통사고 4건 △사인 미상 4건 △직업성 암 1건 등의 순이다. 사실상 업무상 스트레스와 과로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22명으로, 전체의 70%에 달한다.

금융권 전체, 기간을 10년으로 넓히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10년간 발생한 뇌심혈관 산재 신청 6381건 가운데 금융·보험업 신청 건수가 160건에 달한다. 건설업(800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금융·보험업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13년 19명에서 2016년 7명으로 크게 줄었으나, 지난해 19명으로 원상복구됐다. 특히 과로사가 10명, 정신질환으로 사망자 7명 등 총 17명이었다. 전체 사망자 가운데 89%다. 통상 뇌심혈관 질환 사망자가 전체 업무상 질병의 30%대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최대 실적 속에 감춰진 어두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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