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인사이드] 매각 지분 적을수록 ‘경영권 프리미엄’ 비싸다?

입력 2018-08-1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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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SK증권이 공개매각 절차를 개시했을 때 지분 10.04%는 608억 원에 매각됐다. 금융·증권사의 매각가가 주가순자산비율(PER)로 산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 해당 지분의 가치는 415억 원에 불과했으나 약 200억 원 가까이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다.

당시 매각을 주관한 삼정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는 지분이 적을수록 값을 크게 쳐주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싼 가격(적은 지분)에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만큼의 가치를 얹어준다는 것이다.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50% 이상 대량 지분일수록 ‘경영권 프리미엄이’ 비쌀 것이라는 통념과는 반대다.

이러한 현상이 소수주주권이 약한 한국 시장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부작용’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소수주주를 보호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미국·독일·싱가포르의 경영권 프리미엄 지급 규모와 양태를 비교한 결과다.

◇지분 20% 미만 거래에 ‘프리미엄’ 제일 높아 = 14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기업 인수 과정의 경영권 프리미엄 지급 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과 코스닥시장에서는 총 47개 기업에서 최대주주 변경이 발생했다. 지배주주의 지분 이전을 통해 최대주주가 변경된 매각 사례다.

해당 거래에서 이동한 지분들의 평균값은 28.9%에 불과했다. 가장 낮게는 5.5% 지분 이동만으로 최대주주가 바뀐 사례도 있었다. 그럼에도 47건의 거래 중 31건(66%)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이 지급됐다. 경영권 프리미엄 지급 규모도 시장가격(거래 전 종가) 대비 50% 수준이었다.

(출처=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출처=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특히 인수 지분율이 높은(50% 이상) 거래보다 낮은 거래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 많이 지급됐다. 거래 1일 전 종가 기준으로는 20% 미만 지분거래에 지급된 경영권 프리미엄이 가장 컸다.

반면 2005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과 독일, 싱가포르의 M&A 사례를 보면 50% 미만 지분이 거래된 사례 자체가 20% 이하로 적었다. 프리미엄 지급 역시 거래되는 지분량과 비례해 높게 나타났고 그 규모도 시장가격의 30% 내외에 그쳤다.

임자영 KCGS 연구원은 “지분율이 높을수록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어 더 높은 프리미엄이 지급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국내 시장의 경우 적절한 자원 배분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며 “거래가격의 적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KCGS는 50% 미만의 지분으로도 충분히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이러한 모순적인 거래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경영권 매각 시 소수주주를 보호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어 적은 지분으로도 회사 주체가 이동하고 경영권 프리미엄도 모든 주주가 공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영권 팔리는 대로 끌려다니는 소수주주 = 경영권 프리미엄은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 주식 지분을 인수할 때 해당 주식의 평가가치를 웃도는 금액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매도인에게 지급되는 초과이익이다. 국내 현행법 체제에서 이 초과이익은 경영권을 보유한 일부 지배주주에게만 귀속된다.

이른바 시장원칙(Market rule)이 익숙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이익 분배가 매우 당연한 원칙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현상은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인수의향자가 지배주주 이외의 소수주주에게서 추가적인 지분을 인수해야 할 유인을 주지 못한다. 소수주주들은 50%도 되지 않는 지분에 경영권이 팔리는 것을 보며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 회원국 대부분과 싱가포르·중국·홍콩·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경영권 매각 시 의무공개매수제도 등을 도입해 적극적으로 소수주주를 보호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보유 주식의 비중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지배주주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리는 것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임 연구원은 “경영권 프리미엄은 지배주주가 보유한 주식가치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 양수인의 주식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에 따라 지급되는 금액”이라며 “지배주주에게만 지급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없지만 법적으로 지배주주에 충실의무를 부여해 소수주주의 이익 침해를 방지하고 있다. 지배주주가 충실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소송과 이로 인한 분쟁 리스크를 이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반면 현행 국내법하에서는 지배주주의 지분 거래를 통한 경영권 변동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하락할 때도 소수주주가 이를 제어할 방법이 없다. 1997년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된 적이 있지만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IMF의 권고로 폐지됐다. 경영권 이전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법과 제도를 따르고 있지만 지배주주의 충실 의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해 법원 관리를 받는 기업의 경우 회생법상 공정성 원칙에 따라 기존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현재 대주주 권한을 배제하고 소수주주 지분까지 공개매각을 재실시하는 등의 적극적인 주주권 보호는 재판부의 적극적인 결단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임 연구원은 “소수주주의 재산에 직접적인 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경영권 변동 시 소수주주가 회사를 떠날 수 있는 권리 정도는 부여해야 한다”며 “자본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 본인과 특수관계인이 25% 이상의 지분을 신규 취득하거나, 이미 25% 이상을 취득하고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에는 공개매수를 통해 의결권 주식의 50% 1주 이상의 지분을 취득하도록 하는 제도(구 증권거래법 제21조 제2항, 구 증권거래법 시행령 제11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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