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이 지주사 전환 후 재무건전성 강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주목할 점은 한진 일가의 꼼수로 핵심 계열사 가치 반영이 투자자산으로 분류됐다는 사실이다.
◇ 지주사 규제가 도와준 재무건전성 = 한진칼은 총수 후계 경영의 핵심 기업이다. 최대주주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개인 지분율이 17.84%인 가운데, 세 자녀(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2.34%, 조현아 전 부사장 2.31%, 조현민 전 전무 2.30%)가 6.95%를 보유하고 있다. 한진그룹 핵심 계열사 내 오너 3세들의 지분율이 가장 높다. 한진그룹은 후계 상속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주사 제도를 활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애초 지주회사제도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기업구조 조정을 촉진하고 소유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허용됐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소유한 자회사의 주식가액 합계가 당해 회사 자산총액의 50% 이상인 회사를 지주회사로 규정하고 있다. 상장회사의 경우 지주회사가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 지분율은 최소 20%다. 비상장 회사는 40%다. 부채비율도 200% 이하로 유지하면 된다.
한진그룹은 일련의 분할·합병 과정을 거쳐 2013년 지주사인 한진칼(대한항공과 분할)을 설립했다. 2013년 말 별도 기준 부채비율은 54.08%였다. 자회사들의 지분율은 20% 이상으로 정리됐다. 실적도 양호했다. 당해 매출액과 영업이익(한진칼 별도 기준)은 각각 147억 원, 122억 원이다. 당시 현금성 자산은 384억 원, 단기금융상품(현금 자산으로 분류)이 6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영업활동현금흐름(직접적인 경영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32억 원이다. 투자활동현금흐름은 마이너스(-) 601억 원으로, 대부분 단기금융상품(600억 원)이 차지했다. 자금 유출이 아니라 예금을 통한 내부 자금이 유보된 셈이다. 재무활동현금흐름(외부 자금 조달)은 -47억 원이다. 전체 현금흐름이 회계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우량기업(성숙기)에 속한다. 한진칼이 이론적으로 완벽한 기업으로 변신한 셈이다.
부채 이전 효과가 컸다. 대한항공은 2013년 8월 한진칼과 대한항공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대부분 부채를 대한항공에 이관했다. 물론 화물기 투자와 대형기 도입을 위한 금융리스 등 대부분 부채가 항공업에서 발생하는 만큼 대한항공 이관은 당연한 순서였다. 다만 업계에선 △주요 투자자산의 부채 △한진해운 등 부실 및 부채 증대 가능성 자산의 이관 등으로 오너 기업의 리스크를 줄이는 작업으로 평가했다. 특히 대한항공은 2013년 이후 진행된 한진해운에 대한 대여금, 유상증자 부담을 떠안았고, 2016년 한진해운의 청산 과정에서 재무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경영상의 책임을 져야 하는 오너가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고, 한진칼은 계열사 투자자산 가치 감소 등 간접적인 영향만 받았다.
한진칼의 올해 3월 말 기준 부채비율은 60.1%다. 여전히 우량 대기업 수준이다.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이 1519억 원가량 된다. 현금 흐름도 우량 기업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재무제표의 마법…대한항공·한진이 투자자산? = 한진칼은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한진을 관계기업투자자산(지분법적용투자지분)으로 분류한다. 대한항공과 한진의 과도한 부채(부채비율)가 한진칼의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는다. 한진칼의 실질적인 지배력이 있지만 규정을 이용한 꼼수가 작용했다.
상장사는 2개 이상의 회사가 법률상으로 서로 독립적이지만 실질적으로 지배 · 종속 관계에 있는 경우 지배회사와 종속회사의 재무제표를 합해야 한다. 첫 번째 연결대상 지배·종속관계 판단 기준은 종속회사 발행주식의 50% 이상을 소유한 경우다. 또한 지배회사가 종속회사 발행주식의 30% 이상을 소유하고 최대주주일 때 해당 기업은 연결기준 재무제표를 작성한다. 이 밖에도 지배회사와 다른 종속회사가 종속회사 발행주식의 30% 이상을 소유하면서 최대주주이면, 지배회사는 대상 회사의 재무제표를 연결해야 한다.
한진칼은 아슬아슬하게 규정을 피했다. 실제 한진칼이 대한항공의 지분 29.96%를, 조양호 회장 등 사주가가 0.03%가량을 갖고 있다. 보유지분율이 30%를 밑돈다. 한진도 마찬가지다.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 일가와 함께 29.18%의 한진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한진칼이 양 사를 관계기업투자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유다.
반면 일반적인 상식은 한진칼과 양 사를 하나의 기업으로 생각한다. 한진칼 실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표권 매출(연간 300억 원 안팎)이 대한항공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적이 종속된 것이다. 또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상표권 사용료 책정 및 지급 등에 대한 전반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진 만큼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도 한진칼의 재무평가를 하는 과정에서 대한항공과 한진을 합산, 적용해서 평가한다. 서강민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최근 기업 평가 보고서를 통해 “한진칼은 사업자회사와의 통합도가 매우 높다”며 “다만 주력 자회사인 대한항공과 한진의 경우 연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진칼과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을 합할 경우 대한항공과 한진에 대한 지분율이 각각 33.3%, 34.6%인 점, 실질적인 이사회에 대한 지배력 등을 고려하면 대한항공과 한진에 대한 한진칼의 지배력이 인정된다”며 “한진칼의 분석 재무제표는 대한항공과 한진의 연결재무제표 단순합산으로 측정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한진그룹의 2014년 그룹사 총합(단순합산 계열사 간 지분출자액을 총자산과 자기자본에서 상계 처리) 부채비율은 870.7%다.
지난해 △대한항공의 유상증자(3월 4577억 원) △신종자본증권 발행(6월 3억 달러) △한진부산컨테이너터미널의 외부자본유치(약 2500억 원) △진에어의 IPO 등을 통해 자본이 확충되고, 원화 강세(2016년 말 1208.5원 → 2017년 말 1071.4 원)로 외화 부채 감소 등이 겹치면서 총합 부채비율이 459.7%(2018년 3월 말)로 줄었지만 여전히 재무 부담이 과중한 수준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