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사에라] 그렇게 여름은 간다

입력 2018-08-1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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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워터파크가 있다.

하나는 대형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워터파크이다. 이 워터파크는 파도풀이나 슬라이드 같은 놀이시설도 훌륭하지만, 수질관리나 안전요원 배치, 탈의실이나 샤워실 같은 편의시설 면에서도 흠잡을 데가 별로 없다. 물론 그래서 사람도 많고 가격도 비싸다. 그게 유일한 단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지자체나 지역 사설 업체에서 임시로 운영하는 워터파크인데… 이 워터파크는 워터파크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그냥 놀이터라고 하면 딱 좋은, 그런 곳이 대부분이다. 계곡을 그물로 막고 그곳에 다이빙대 몇 개를 설치한 후 워터파크라고 우기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해변 옆에 펜스를 치고, 에어바운스 미끄럼틀 몇 개를 가져다 놓은 후 입장료를 받는 곳도 있다. 물론 탈의실이나 샤워실 같은 편의시설이 있긴 하지만 재난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런 단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사람들은 넘쳐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싸니까, 대형 워터파크보다 저렴하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에어컨이나 냉장고 고장 수리, 세탁기 청소 등을 겸하는 재활용센터에서 일하는 성호 씨가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함께 찾은 워터파크는 후자였다. 살고 있는 광역시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몰고 나가면 나오는 해변에 위치한 워터파크. 입장료는 주민등록 주소지가 워터파크 주소지와 같은 지자체로 되어 있으면 오천 원, 그 외 지역 사람들은 만 원인 곳이었다. 초등학생은 칠천 원. 성호 씨는 아들과 함께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서려다가 잠깐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했다. 외부에서 사온 음식은 절대 반입 금지라는 것이 워터파크 측의 설명이었다.

“물도 안 돼요? 뭐가 이렇게 딱딱해. 지역에서 운영하는 곳이…”

아들 수영복이 있는 가방의 지퍼를 열어 보이면서 성호 씨가 투덜댔다.

“안에 들어가면 편의점도 있고요, 치킨이나 피자를 사 드실 수도 있어요.”

관리요원 모자를 쓴 남자가 성호 씨 가방에서 생수병 두 개를 빼면서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따로 보관해드릴 테니까 나가실 때 찾아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그 생수병 안에 담긴 것은 물이 아닌 소주였다. 아들 보기가 뭐 해서, 애써 생수병에 담아온 것인데, 그걸 압수당한 것이었다. 아니, 그럼 소주도 없이 뭘 하면서 긴 시간을 때우나? 성호 씨는 워터파크 입장 전부터 짜증이 밀려왔다.

술 때문에… 성호 씨는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군 제대 후, 한 전자제품 회사 서비스센터에서 기술을 배운 성호 씨는, 그때부터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졌다. 힘드니까, 한여름 한증막 같은 남의 집 베란다에 설치한 에어컨 실외기 코일을 교체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다 늘어진 엿가락처럼 변해버리고 마니까, 퇴근 후 동료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날이 늘어갔다. 술기운을 빌려 일을 할 때도 많았는데, 결국 그 때문에 서비스센터에서도 퇴사하고, 몇 군데 직장을 전전하다가 고향 먼 친척이 운영하는 지금의 재활용센터에 자리 잡은 것이었다. 결혼 십 년차에 접어드는 성호 씨는 아내와 말을 안 하고 지낸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그 역시도 다 술 때문이었다. 성호 씨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직장 동료와 마시지 않는 날엔 혼자 집 앞 편의점 벤치에 앉아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셨다. 밤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해장국집 주방에서 일하는 그의 아내는, 몇 번 아들 이야기를 꺼내며, 자기가 출근 전까지만 집에 들어와서 아들 좀 챙겨달라고 부탁하다가, 그 뒤로는 아예 성호 씨와 대화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그러니까 성호 씨가 오늘 아들과 함께 워터파크를 찾은 것은, 나름 큰 결심을 했다기보단, 그래도 아들한텐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어쨌거나 겉모습만이라도 아빠 노릇을 해 보고 싶어서, 그러고 난 뒤 다시 아내에게 말을 걸어보겠다는 생각으로, 길을 나선 게 맞았다.

워터파크 안은 이 사람들이 다 어디에서 왔나, 싶을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이만 원을 내면 천막이 달린 평상을 하나씩 쓸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비어 있는 곳이 없었다. 선베드도, 파라솔도 남은 곳이 없었다. 성호 씨와 아들은 어쩔 수 없이 만 원을 내고 돗자리를 하나 빌려 모래 위에 깔고 앉았다. 아들은 수영복으로 갈아입었지만, 성호 씨는 그냥 입고 있는 옷 그대로 돗자리에 누웠다.

“아빤 물에 안 들어가?”

아들이 파란색 비닐 튜브를 허리에 낀 채 물었다.

“너나 가서 놀아. 아빤 원래 수영하는 거 싫어해.”

성호 씨는 자리에 누워 계속 빼앗긴 소주 생각을 했다. 티켓 검수하는 직원 옆에 보관함이 있었으니까, 어떻게 몰래 빼올 수 없을까? 그것만 있으면 그래도 지루하진 않을 거 같은데… 성호 씨는 옆에 있는 아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떠올리지 않았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성호 씨는 인상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는 아직 기울지 않았고, 워터파크 안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성호 씨의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물에 들어가지 않은 채, 가만히 돗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수영복도, 튜브도 젖지 않은 모습이었다.

“너 왜 물에 안 들어갔어?”

성호 씨는 조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아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저거…”

아들이 손가락으로 스펀지밥 모양의 에어바운스 미끄럼틀을 가리켰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줄을 서서 타고 있는 그 미끄럼틀 옆에는 커다란 안내 표시판이 있었다.

-신장 120㎝ 이하는 보호자와 함께 이용 가능합니다.

“아빠 없으면 혼자 못 탄대.”

아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아들은 얼마나 혼자 이곳에 앉아 그 미끄럼틀을 바라만 봤을까? 성호 씨 가슴에 무언가 울컥하는 것이 지나갔다.

“그럼 아빠를 빨리 깨웠어야지!”

성호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 손을 잡고 미끄럼틀 쪽으로 걸어갔다. 수영복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어쩌지… 성호 씨는 잠깐 그 생각을 했지만, 상관없다고 혼자 머리를 흔들었다. 폭염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 월 1회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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