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은 좀 가셨지만 정전으로 인해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몇몇 언론은 “정전으로 인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운운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칠흑은 ‘漆黑’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칠할 칠’, ‘검을 흑’이라고 훈독한다. 따라서 漆黑이란 온통 검은색을 칠했다는 뜻이다. 漆은 ‘옻’, 즉 검은색 안료(顔料)의 일종인 ‘칠옻’을 뜻하는 글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칠흑 같은 어둠’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풀이하자면 ‘검은 옻칠을 한 것처럼 깜깜하다’는 뜻이다. 한 점의 불빛도 볼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말인 것이다.
1960~70년대만 해도 정말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있었다. 시골엔 아직 전기가 보급되지 않아 석유 등잔불만 끄면 주변은 온통 어둠이었다. 그믐 무렵 깊은 밤, 달도 뜨지 않았는데 마을의 온 집이 다 잠들어 등잔불을 켠 집이 한 집도 없을 때면 어디서도 불빛을 볼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칠흑 같은 밤’은 아주 깊은 산골 외에는 어디서도 볼 수 없다. 주변에 가로등이 밤새 밝게 켜져 있고, 내 집의 전깃불을 끄더라도 이웃의 전깃불은 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설령 이웃이 불을 껐다고 하더라도 이웃의 이웃, 그 이웃의 이웃들은 불을 끄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디서나 불빛을 볼 수 있어서 완벽한 어둠이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말이 그렇지 일시적으로 정전이 좀 됐다고 해서 칠흑 같은 밤을 경험할 수는 없다. 정전이 되면 곧바로 집집마다 손전등을 켜고, 촛불을 켜고, 보조 발전기가 돌아간다. 그리고 거리엔 여전히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밝힌 자동차들이 질주한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치여 완벽한 어둠이 사라지다보니 별을 보기도 쉽지 않다. 휘황한 조명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별이 빛을 잃었다. 인류는 이미 칠흑 같은 어둠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했다. 별 헤던 밤이 그리운 건 나만의 감성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