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고려불화, 그 이름을 되찾기까지

입력 2018-08-2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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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 회화.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단아한 구도, 적·녹·청색을 주조로 한 화려한 색채의 조화, 물 흐르는 듯 유려하고,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선묘(線描). 고려불화 이야기다. 지금이야 이러한 찬사와 미학적인 평가가 상식이지만, 고려불화가 한국 미술의 특별한 존재로 그 뛰어난 예술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지는 40년이 채 안 된다.

이 이야기는 1978년 10월, 일본의 한 사립미술관 전시에서 시작된다. 나라(奈良) 외곽에 자리한 야마토분가간(大和文華館)의 ‘고려불화특별전’이 바로 그것이다. 전시에 나온 70점(사정이 있어 전시되지 못했지만 도록에 실린 작품까지 합치면 93점)은 그동안 중국불화로 알려진 것들인데, 여기서는 모두 ‘고려불화’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이전에도 이 가운데 몇 작품은 고려불화일 거라는 이야기가 간혹 있었지만, 저명한 미술관이 공개적으로 이들 모두가 고려불화임을 선언한 것이다.

일본 학계와 문화계에 준 충격과 파장은 대단했다. 지구축을 바꾸는 규모 10의 지진에 비유한 기사도 있었다. 전시 개막 후 토론회에서는 고성이 오가는 격론이 벌어지고, 고려불화가 아니라는 측은 중도에 자리를 박차고 퇴장했다고 하니 당시 살벌했던(?) 토론장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극심한 반대논쟁이-사실인즉, 일본 미술에 끼친 한국 미술의 절대적인 영향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일본 학계의 콤플렉스 내지 허위의식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아야겠지만- 충분히 예상되었음에도 많은 공력을 들여 전시를 기획한 중심인물은 야마토분가간의 이시자와 마사오(石澤正男·1903~1987) 관장이었다. 그는 1930년대에 미국에서 국제 수준의 미술감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영어에도 능했고, 연구 자세는 과학적이었다. 오랫동안 일본 문화재청장을 지냈으며, 학계와 문화계가 인정하는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대가였다.

전시 후 한동안 이런저런 논란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시자와 관장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방대한 자료와 과학적인 감식 결과는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 완벽한 승리였다. 결국 이 전시가 기폭제가 되어 그때까지 일본 이곳저곳에 소장되어 중국불화로 알려져 있던 100여 점의 불화가 당당히 고려불화로 재탄생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동적인 국면 전환이었다. 언론 보도처럼 세기에 한 번 있을까 한 미술계의 명장면이었다.

당시 국내에는 제대로 된 고려불화가 한 점도 없었고, ‘고려불화’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그 기막힌 상황에서 엄청난 반전을 이루었으니, 우리는 어떠한 말로 이시자와 관장과 학예팀이 이룬 성과에 경의를 표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하여간 학문적인 양식(良識)에 충실한 한 일본인의 열의와 노력으로 고려불화는 국적을 되찾았고, 더불어 세계미술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그 짧은 기간에 더욱이 현존하는 작품이 170점이 채 안 되는 고려불화가 하나의 독립된 미술 장르가 되고, 그 이름만으로 예술성을 인정받게 되는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만큼 고려불화는 위대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170점 가까운 고려불화 가운데 한국 10여 점, 유럽과 미국 20여 점을 뺀 나머지는 모두 일본에 있다. 그렇게 된 역사적인 배경은 또 다른 이야기이므로 여기서 언급하지 않는다.

사족으로 덧붙이는 후일담. 고려불화특별전이 열리고 몇 해 지난 1982년, 호암미술관(지금의 삼성미술관 리움)이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를 일본에서 사왔고, 그 후에도 몇몇 기업과 개인컬렉션이 해외 경매 등을 통해 고려불화를 구입해 옴으로써 국내에도 10여 점을 소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0년 10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내외의 명품 고려불화를 어렵게 빌려와 단일 전시로는 세계 최고 최대 수준의 ‘고려불화대전-700년 만의 해후’를 개최함으로써 고려불화의 모국으로서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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