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은행법은 산업자본(비금융 주력자)이 금융회사 지분을 4%(의결권 없이 10%)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한다. 대기업이 은행을 사금고처럼 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은행법 적용을 받는 인터넷은행도 그 대상이다. 이 때문에 은산분리 규제에 막혀 인터넷은행이 애초 기대했던 성장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기업 KT를 2대 주주로 둔 케이뱅크는 자본을 확충하려 유상증자를 추진했으나 어려움에 처했다. KT가 투자를 한 만큼 다른 주주들도 비율을 맞추기 위해 돈을 내야 하는 탓이다.
현재 국회에는 은산분리 완화를 담은 인터넷은행 특례법 제정안 4건과 은행법 개정안 2건 등 총 6건이 있다. 지분 보유 한도를 25%나 34%, 50%로 늘려 산업자본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인터넷은행에 시중은행과 같은 규제는 지나쳐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KIF) 선임연구위원은 인터넷은행의 ‘시스템 리스크’ 크기를 반영해 일반은행과 다른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터넷은행의 자산 규모가 작고 업무 범위가 한정적인 만큼 일반은행과 같은 규제를 들이대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17일 KIF 금융브리프에 실린 ‘인터넷 전문은행의 리스크 특성 및 규제’ 보고서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국내 인터넷은행 평균 자산 규모는 4조7000억 원이다. 시중은행(268조 원)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지방은행(36조 원)에 비해서도 규모가 작다. 업계 1위인 카카오뱅크 자산 규모는 7조9000억 원이지만 지방은행 평균보다 낮다. 업무 범위 역시 시중은행이나 지방은행에 비하기는 어렵다. 기업금융이나 펀드 판매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금수취기관 규제는 시스템 리스크 크기에 비례한다. 영업 구역과 업무 범위가 넓을수록 리스크가 큰 것으로 보고, 자본금과 지분 보유 요건을 강화하는 식이다. 전국에서 예금과 대출, 지급결제, 방카슈랑스, 신용카드, 펀드 판매 등 다양한 업무를 하는 시중은행에 강한 규제를 들이대는 이유다. 시중은행은 최소자본금(1000억 원)이 가장 크고, 동일인 보유 지분 한도(10%)와 은산분리(의결권 4%) 등 제한이 많다. 반면 지방은행은 전국 영업이 어렵기에 최소자본금(250억 원)이 더 작다. 동일인·산업자본 지분 보유 한도(각 15%)는 높다.
저축은행으로 눈을 돌리면 규제는 더욱 헐거워진다. 저축은행은 일반은행과 달리 외국환, 방카슈랑스, 신용카드, 펀드 판매 등을 할 수 없다. 영업 구역도 제한돼 최소자본금이 (40억~120억 원)이고, 지분 보유에도 제한이 없다.
문제는 인터넷은행의 자산 규모와 업무 범위가 제한돼 시스템 리스크가 작은데도 시중은행과 같은 규제를 받는다는 점이다. 바젤 국제기준에 따르면 금융회사 규모와 다른 금융회사에 대한 자산·부채, 원화·외화 결제 규모, 업무 복잡성 등으로 시스템 리스크를 정한다.
서 위원은 “인터넷은행을 도입할 때는 영업 구역을 제한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시중은행에 해당하는 규제를 적용했으나 도입 이후 1년이 지났어도 아직 자산 규모 확대에 한계가 있다”며 “인터넷은행 시스템 리스크를 고려해 동일인 소유지분 한도 규제 등 규제체계를 합리적으로 관리할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은행업 진출 허용 =여당과 야당이 은산분리 완화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뤘으나 최근 떠오른 쟁점이 있다. 바로 대기업의 인터넷은행 지분 참여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지다. 현재 정재호·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 발의안은 ‘총수가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10조 원 이상 대기업)’을 은산분리 완화에서 제외했다. 이 경우 카카오뱅크 대주주 후보인 카카오가 대기업으로 분류돼 은산분리 완화 혜택을 못 받을 수 있다. 자산이 8조5000억 원에 이르는 카카오는 성장세를 볼 때 2~3년 안에 10조 원을 넘을 가능성이 크다. 새 인터넷은행 IT기업 후보로 거론되는 네이버도 자산이 7조 원을 넘는다. 이 때문에 IT기업에 한해 은산분리 완화를 허용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은행을 도입한 일본은 어떨까. 일본은 이미 IT기업에 은행업을 허용하고 있다. 최근 KIF 금융브리프에 실린 ‘IT기업의 은행업 진출 논의 본격화’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2000년부터 비금융업의 은행업 진출을 허용하고 있다. 2000년 미쓰이스미토모은행과 야후 등이 재팬네트은행을, 2011년 전자업체 소니가 소니은행을 설립했다. 그 밖에 편의점 세븐일레븐재팬이 설립한 세븐은행(2001년), 유통업체 이온그룹이 설립한 이온은행(2006년), 다이와증권그룹이 설립한 다이와넥스트은행(2010년) 등이 있다.
일본도 산업자본이 은행을 인수·설립할 때 주요주주 규제를 두고 있다. 총 의결권 5%를 넘는 주식을 가진 자는 당국에 신고하고, 20% 이상 보유 시 미리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사항을 충족할 경우 별다른 제한은 없다.
물론 최근 들어 일본은 IT기업의 은행업 진출이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흔들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이 캐피탈원 등 대형은행과 제휴해 당좌계좌 개설 서비스를 한다고 보도한 이후다.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아마존은 5년 안에 약 7000만 개 계좌를 개설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3대 상업은행인 웰스파고와 맞먹는 수준이다. 아마존처럼 기술 우위성과 자체 고객을 보유한 거대 IT기업이 생태계 확장을 위해 금융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문제는 거대 IT기업이 금융산업에 진출하면 대형은행들이 인수 대상이 될 수 있고, 파산 시 일반 사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할지 등이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 일본 금융청은 이러한 금융 리스크에 대비하려 법률 제·개정을 논의 중이다.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규제 둑 무너트려” = 은산분리 완화에 반대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낸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진단’ 자료집을 보면 인터넷은행 성장과 은산분리는 무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케이뱅크가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은산분리 규제 때문이 아니라 케이뱅크가 가계신용대출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못내 존속 가능성에 대한 시장 회의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가장 큰 우려는 은행의 사금고화다. 고동원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대주주인 IT기업이 부실해지면 대주주로서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해 자금을 지원받으려는 유혹이 생길 수 있다”며 “이 경우 인터넷은행 부실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동양증권 사태를 예로 들어 “동양증권이 증권사가 아닌 은행이었다면 동양그룹 사태는 특정 재벌 몰락에서 끝나지 않고 금융 및 경제 위기를 야기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때 피해는 금융소비자와 국민에게 돌아가고, 금융 시스템 안전성을 붕괴시킬 수 있다.
인터넷은행이 IT기술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정부의 장밋빛 전망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 교수는 “IT기술을 활용해 은행업을 하더라도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은행업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라며 “여신 관리를 제대로 못 해 부실이 발생하면 인터넷은행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일반은행들이 IT기술 전문 인력을 확보해 기술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
전체 규제 둑을 무너트릴 수 있다는 것도 주요 반대 논리다. 은산분리라는 기본 원칙을 훼손해 일반은행까지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