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지만 여전히 여성 경제 활동 참가율은 2016년 기준 일본 68%, 한국 58%에 그친다. 지난달 도쿄의대가 여성 지원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점수를 조작해 탈락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 사회는 발칵 뒤집혔고, 사회 저변은 물론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차별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사실 지표만 보면 일본 여성의 경제활동은 지난 몇 년 새 급격히 늘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여성의 경제 진출을 독려하면서 ‘위미노믹스(Womenomics)’ 프로그램을 펼치면서다. 그러나 30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베의 위미노믹스에 ‘성 평등’ 개념은 안 보이고, 값싼 노동력을 총동원하려는 ‘성장주의’만 보인다고 지적했다.
FT가 지적한 일본의 여성 노동정책을 거칠게 압축하면 ‘일해서 경제에 기여나 해라’다. 일본에서 여성은 고위직에 올라갈 수 없고, 임금도 남성이 받는 것의 70%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2017년 OECD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에서 일본은 29개국 중 28위였다. 29위는 한국이다.
문제는 아베의 ‘위미노믹스’가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교토 산교대학의 성 평등 전문가인 키미오 이토는 “정부의 여성 경제진출 정책은 양성평등에 대한 게 아니라 저렴한 여성 인력으로 출산율 저하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메꾸겠다는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가 심각한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은 저출산까지 겹쳐 일손이 모자란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시장에서 배제해왔던 여성들의 노동력을 활용해 성장을 꾀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메이지대학의 츠지무라 미요코 젠더법 센터장은 “여성에게 평등한 직업 전망을 제공하는 대신, 아베 총리의 주요 관심은 중장년층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복귀시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 정부는 뿌리 깊게 보수적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여성들을 시장으로 끌어올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이는 단지 세계에 보여주기에 불과하며, 일본은 여성 역할과 관련해 늘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을 취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아베 총리가 ‘성 평등’이라는 단어 대신 ‘여성 참여’나 ‘여성 발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학자들은 여성 노동정책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이중적인 태도가 1960~1970년대에 있었던 성 역할 구분을 통한 성장방식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이때의 노동 분업은 여성들을 가사노동과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국한했다. 이토 전문가는 1990년 일본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이러한 성 차별적 분업에 기반을 둔 성장방식이 본격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고 봤다. 그는 “성장이 정체한 지난 20년간 엄격한 분업은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쓰비시UFJ의 야지마 야코 수석 연구원은 “일본의 장시간 노동 문화는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더욱 배제한다”며 “과거에는 여성이라는 이유 그 자체로 배제했다면, 이제는 노동시장에 들어온 여성들을 출산휴가나 육아라는 이유로 배제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근로시간을 제한하고, 또 여성들도 승진 기회를 보장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여성 차별이 해소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