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수 소비증진을 앞세워 개별소비세 인하 카드를 꺼냈다. 2008년 리먼쇼크 이후 불경기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정책이다. ‘개소세 인하=불경기’라는 등식까지 나올만도 하다. 다행히 7월 19일 발표한 개소세 인하 이후 자동차 내수 판매는 증가세로 접어들었다. 8월 판매 기준으로 현대ㆍ기아차는 전년 대비 7%대 판매 증가를 기록했다. 르노삼성 역시 1년 1개월 만에 내수판매가 1.5% 늘어나면서 반등했다.
문제는 개소세 인하 이후 일부 국산차는 신차 출시를 빌미로 다시 가격을 올렸다는데 있다. 대신 차 가격이 비싼 수입차는 할인폭이 커진 데다 재고 처분이 시작되면서 특별할인까지 덧붙이고 있다. 시장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즉 하반기 들어 수입차는 할인을 앞세워 꾸준히 가격을 내리는 반면, 국산차는 일부 모델을 중심으로 속속 차 값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개소세 인하 이후 자동차 업계의 가격변화 속내를 알아보자.
궁금증① 국산차 가격은 다시 오르는 건가? = 자동차 회사는 새 모델 출시 때마다 가격을 올린다. 편의장비나 새 기술을 추가했다는 게 이유다. 오히려 신차가 나왔는데 가격을 동결했다면 그게 뉴스다.
신차는 막 나왔을 때 가장 잘 팔린다. 이른바 ‘신차효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효과가 떨어지면서 판매가 감소한다. “신차가 없어서 수익이 줄었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판매 감소로 줄어든 수익은 다른 곳에서 챙긴다. 해마다 협력업체를 불러 납품 단가를 반토막 내는 것도 이런 배경이 존재한다. 신차판매 감소로 수익이 줄면, 부품 단가 인하로 모자란 수익을 채우는 방식이다. “싫으면 (납품) 말라”는 협박 속에 협력사는 어쩔 수 없이 납품 단가를 낮추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런데 일부 국산 디젤차는 9월부터 적용된 새 배기가스 기준(WLTP)에 맞춰 새 모델을 출시하면서 가격을 올렸다. 새 장비를 추가하다 보니 원가가 올랐다는 게 이유다. 개소세 인하 한 달여 만에 차 값을 다시 올린 셈이다. 국산차 업계에서는 “그나마 개소세 인하 덕에 인상분이 줄었다”는 입장이지만 납득이 쉽지 않다.
궁금증② 수입차는 가격을 오히려 내리던데 = 수입차는 규모의 경제논리에 따라 마진이 크다. 차가 적게 팔리니 1대당 마진을 키우는 전략이다. 일부 수입차는 미국 가격의 2배나 된다. 어쩔 수 없는 시장 규모 탓이다. 우리 수입차 시장이 미국만큼 커지면 수입차 가격도 내려갈 수 있다.
물론 마진이 크니 할인율도 크다. 매월 차 판매량에 따라 할인율도 들쭉날쭉이다. 개소세 인하가 비율(1.5%포인트)로 계산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값 비싼 수입차의 인하폭이 큰 것. 여기에 아우디폭스바겐의 대대적인 할인도 하반기 전체 수입차의 할인판매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아우디는 판매 재개에 맞춰 대대적인 할인을 선보이고 있다. A3모델을 대상으로 35% 넘는 할인율을 적용하면서 국산 중형차보다 싼 값에 독일 고급차를 팔고 있다. 폭스바겐 역시 조만간 여기에 버금가는 할인 마케팅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슷한 가격의 다른 수입차도 대대적인 할인에 나서고 있다. 9월부터 적용된 새 디젤 배기가스 기준에 따라 그동안 수입했던, 즉 재고로 쌓여 있던 차들은 유예기간(3개월)이 끝나는 11월까지 모두 차를 팔아야 한다. 대대적인 할인 조건을 내세워 재고 처분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내년 초에나 수입차들은 가격을 소폭 올릴 것으로 보인다.
궁금증③ 개소세 인하 효과는 쌍용차가 독차지? = 착시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내수판매가 전년 대비 각각 7.4%와 7.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쌍용차 판매는 무려 9.7%나 늘었다. 일각에서 개별소비세 효과가 쌍용차에 집중됐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사실과 다르다. 쌍용차의 8월 내수판매(9055대) 가운데 약 40%가 렉스턴 스포츠 판매(3412대)였다.
개소세 인하는 승용차에만 해당되므로 화물차인 렉스턴 스포츠는 물론 승합차인 코란도 투리스모도 해당되지 않는다. 쌍용차의 8월 선전은 단순한 신차 효과라고 보는 게 맞다. 쌍용차 티볼리(-9.9%)와 G4렉스턴(-1.4%) 등은 개소세 인하 대상이지만 오히려 판매가 줄었다.
궁금증④ 개소세 인하 효과가 정말 있을지 = GDP 상승 효과는 있다. 한 나라의 가계와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 기간 동안 생산한 재화 및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평가해 합산한 것이 GDP다. 여기에는 민간소비, 즉 자동차 구입도 포함된다.
상대적으로 비싼 소비재인 자동차가 많이 팔리면 차 회사는 물론 부품회사 수익도 커진다. 이들의 수익 향상은 또 다른 소비를 끌어낸다. 단가가 비싼 승용차의 개소세 인하는 소비 활성화 효과가 뚜렷하다. 정부 역시 이번 개소세 인하를 발표하면서 “0.1% 포인트 수준의 GDP 상승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문제는 실질적인 정책 효과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개소세 인하 때 차 판매가 급증하는데 세율이 다시 원상 복귀되면 판매는 다시 급감했다. 자동차산업 전반에 걸쳐 체질을 강화하는 게 아닌,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여기에서 나온다.
사정이 이런데 이번 개소세 인하는 제대로된 효과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개소세 인하 기간에 소비가 집중돼야 더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는데 내년까지 기간이 연장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차 판매가 오히려 주춤하고 있다.
시작점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었다. 백 장관은 최근 “개소세 인하를 내년 상반기까지 연장하도록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 이후 신차 구입 계획을 미루겠다는 이들이 많아졌다. 정부가 애초 의도했던 만큼 정책 효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이 때문이다.
개소세 인하 기간 연장은 종료 시점에 임박해서 발표해야 맞다. 그래야 추가로 더 많은 소비를 끌어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정부의 대응은 안일했다. 조삼모사 정책,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비판도 어쩌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