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만년필 이야기] 24. 한일전만큼 뜨거운 라이벌대결

입력 2018-09-0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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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놓고 벌인 한국과 일본의 축구 대결. 우리나라 전력이 한 수 위로 평가됐지만 어느 누구도 승리를 낙관하는 사람은 없었다. “공은 둥글다”라는 제프 헤르베르거(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우승한 서독 국가대표팀 감독)의 말처럼 축구 경기는 변수가 많고, 더군다나 숙적(宿敵) 일본과의 경기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라이벌전 경기. 이번엔 이겼지만 또 언젠가는 질 것이다. 숙적 또는 라이벌이란 오랜 세월 동안 어느 한쪽에 기울어짐 없이 이기고 지는 것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숙적 관계가 양국 축구 발전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만년필의 세계에도 이런 숙적 관계가 있다. 파커와 셰퍼의 대결은 한일전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설립시기를 보면 파커는 1888년, 셰퍼는 1913년으로 셰퍼가 후발주자이다. 두 회사는 발명가인 창업자의 이름이 회사명이 된 점은 같지만, 그것 말고는 비슷한 점은 별로 없다. 축구로 비유해 2골 먹고 3골 넣는 공격적인 축구가 셰퍼라면 파커는 탄탄한 수비 후에 역습으로 1대 0으로 이기는 ‘골을 먹지 않는’ 수비 축구였다.

이런 차이는 1920년 시작된 만년필의 황금기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역시 셰퍼였다. 셰퍼는 1920년 만년필에서 가장 중요하고 취약한 부분인 만년필의 심장 펜촉을 두세 배 두껍게 하여 고장 날 여지를 확 줄인 ‘LIFE TIME’, 즉 사용자의 평생 동안을 보증하는 평생보증 만년필을 내놓는다. 가격은 8.75달러. 당시 미국 노동자의 연봉이 200~400달러인 것을 감안한다면 꽤 비싼 가격이었다.

이것은 크게 성공해 전미(全美) 점유율이 1919년 8%에서 1921년 15%까지 오르게 된다. 파커는 바로 다음 해 파커 듀오폴드를 출시했다. 파커다운 역습이었다. 가격은 7달러. 보증기간은 평생 보증과 다름없는 25년, 여기에 빨강이라는 컬러를 입혔다. 파커답게 살짝 가격을 낮추고 컬러를 더해 내놓은 것이다. 1922년 두 회사의 매출은 엇비슷한 200만 달러 정도로 파커의 역습 또한 대성공이었다.

▲1926년 파커 듀오폴드 광고
▲1926년 파커 듀오폴드 광고
이 역습에 셰퍼는 1924년 더 세찬 공격을 준비했다. 이번엔 가볍고 단단하며 훨씬 다양한 컬러가 가능한 플라스틱 만년필이었다. 이 새로운 재질의 만년필은 날개 돋친 것처럼 팔려나갔고, 1925년 셰퍼의 전미 점유율은 20%에 이르게 된다. 파커가 가만있을 리 있나.

그런데 그 대응은 전과 아주 달랐다. 듀오폴드가 여전히 잘 팔리고 있어 굳이 모험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는지 한동안 관망했다. 그러다 2년 뒤인 1926년 매출이 역전되고 격차가 벌어지자 파커 역시 플라스틱 만년필을 내놓고, 그랜드 캐년과 비행기에서 자사(自社)의 플라스틱 만년필을 떨어트리는 광고를 하는 등 관망에서 공격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27년, 셰퍼에 없는 컬러인 파랑의 라피스라즐리와 노랑인 만다린을 잇따라 내놓았다.

셰퍼가 앞서 나가고 파커가 따라가는 양상은 1930년대 초반까지였다.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까지는 파커가 경쟁을 주도하지만, 그 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1980년대까지 이런 대결이 계속된다. 결국 이 라이벌 관계가 세계를 호령했던 약 60년 동안이 미국 만년필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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