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 원장은 10일 핀테크 회사 70곳의 120명 전문가와 만난 자리에서 ‘머신 리더블 레귤레이션(MRR)’ 시범사업을 아시아 최초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MRR은 금융 관련 법규를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언어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윤 원장은 “금융규제가 복잡해지면서 회사들의 규제 준수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사람의 개입 없이 컴퓨터가 스스로 금융 규제를 인식하고 규제를 준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금감원이 먼저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규제(Regulation)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레그테크(RegTech)’의 산업의 일환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금융회사의 규제 준수 업무를 IT 기술을 통해 비대면화·자동화하기 위해 관련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KPMG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 8억7000만 달러 수준이었던 레그테크 투자는 올 상반기 13억7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금감원은 올해 MRR 시범사업에 대한 파일럿 테스트 외에도 4분기 중 학계와 업계, 법조계 등 전문가로 구성된 레그테크 발전 협의회를 발족할 계획이다.
특히 윤 원장은 핀테크에서 레그테크를 거쳐 섭테크(SupTech)로 이어지는 혁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섭테크는 금융감독(Supervision)과 기술의 합성어로 최신기술을 활용해 금융감독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기법이다.
윤 원장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금융상품 약관 심사와 같이 섭테크를 활용하면 방대하고 난해한 금융정보와 서비스를 자동으로 신속·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며 “금융소비자 보호 수준도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영국금융감독청(FCA)과 싱가포르 통화청(MAS), 네덜란드 중앙은행(DNB) 등은 데이터 분석 조직을 신설하는 등 섭테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금감원은 섭테크와 관련해 △AI 약관 심사 시스템 시범 구축 △금융 감독 챗봇(Chatbot) 시범 구축 △전자 금융사기 방지 알고리즘 개발 등의 사업을 추진 중이다. 연내에 파일럿 테스트를 통해 효과를 검증한 후 내년부터 실제 업무에 도입할 계획이다.
이날 행사는 금감원이 핀테크 업체들과 대규모로 갖는 첫 행사다. 금융위원회가 주기적으로 핀테크 데모데이 행사를 열고 있지만 감독과 검사 일선에 있는 금감원이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참석한 핀테크 기업들은 금감원의 인허가 처리 지연이나 사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규제 관련 이슈 등 애로사항을 전달했다. 또 핀테크의 기반기술 육성이나 핀테크 생태계 발전을 위한 정책철학 등 다양한 질의와 건의사항을 제시했다.
윤 원장은 “핀테크 전략협의회와 현장자문단을 통해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조속히 해결하겠다”며 “소비자보호 문제 등 새로운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상시감독체계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