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래를 팝니다

입력 2018-09-11 10:35 수정 2018-09-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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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벼리 금융부 기자

“우리는 미래를 파는 사람들입니다.”

한 보험사 관계자의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보험에는 복잡한 상품들이 수없이 많다. 한 보험 상품을 100%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모든 상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기본 원리가 있다. 미래의 지출에 대비해 오늘부터 미리 돈을 차곡차곡 쓰는 것. 그런 의미에서 보험 가입은 일찌감치 미래를 사두는 행위가 된다.

그런데 ‘미래(未來)’란 사전적으로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고, 달리 말해 그 누구도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어떤 상태를 말한다. 이를 ‘불확실성’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에게 불확실성은 최대의 적이다. 다시 말해, 보험이란 불확실성을 확실성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험과 그 산업이 태생부터 필수불가결하면서도, 지극히 까다로운 이유다. 보험료와 보험금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보험사들의 고충이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그렇다고 해도 불확실성의 결과에 따른 책임이 보험사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직 오지 않은 시점을 담보로 가입자들의 현재 가치를 받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은 일반인의 40% 정도에 불과했다. 사실상 불치병 수준이다. 생존 기간도 짧았다. 암 치료는 대부분 종합병원에서 끝났다. 그러니까 보험사들은 그때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암보험 상품을 팔 때 의학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하고, 생존율과 그 기간이 개선될지 몰랐을 것이다. 암환자들이 종합병원에서 급한 치료를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요양병원에 머물면서 안정을 찾는 것이 보통의 치료 과정이 되리란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언제 걸릴지 모를 암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20여 년이나 지난 미래에 암에 걸려 생사를 왔다 갔다 할 줄 몰랐을 것이다. 의학기술 발전, 요양병동의 일반화 등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을 권유하던 보험사들이 모호한 약관을 근거로 일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리라고는, 자신들이 현수막을 내걸고 피켓을 들며 거리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험사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줄은 몰랐다. 불확실성이다. 이 ‘요지경’ 속에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불확실성을 거래하는 것이야말로 보험이라는 점이다. “지금처럼 요양병원이 활성화하고 생존율이 높을 줄 알았다면, 애초에 보험료를 더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한 보험사 관계자의 말이 공허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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