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비움의 여유, 채움의 여유

입력 2018-09-11 11:14 수정 2018-09-1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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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할 무렵이었다. 다니던 직장을 호기롭게 그만두고 혼자 유럽 여행에 나섰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목적도 있었다. 여행 초기, 몇몇 지인들과 만날 약속을 빼면 정해진 일정이 없었다. 나머지는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이미 유럽 여행을 한 차례 다녀왔던 터라 별다른 걱정도 없었다. 그런데 여행의 최대 위기는 고작 5일 만에 찾아왔다.

파리에서 다음 목적지인 마르세이유로 이동하는 사이, 세계적인 연극축제가 열리던 프랑스 남부의 한 도시를 찾은 게 늦은 오후였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으니 숙소도 없었다. 그냥 밤새 거리를 걷기로 했다. 다행히 꽤 늦은 시간까지 거리는 축제로 활기찼다. 다만 커다란 짐을 맡길 곳이 없다는 건 문제였다. 결국 밤새 양손 가득 무겁고 커다란 짐을 들고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위기는 긴장의 끝에 찾아왔다. 예정에 없었던 일정을 무사히 잘 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다음 날 새벽 첫 기차를 기다렸다. 긴장이 풀렸던지 나도 모르게 슬며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다. 난 그렇게 갖고 있던 모든 짐을 도둑맞았다. 바지 주머니 안에 있던 휴대폰을 제외하면 남은 것은 신용카드 한 장이 유일했다.

마음만 무거워질 뿐 바뀌는 건 없었다. 어설펐던 유럽 여행 경험만 믿고 자만했던 탓이다. 여행을 계속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던 중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모든 짐이 나의 곁을 떠나가니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양손 가득 무거운 짐 대신 몸이 가벼워지니 오히려 여행은 풍성해졌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예상 밖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임시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되돌아갔던 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도시였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채움의 여유를 좇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비움의 여유도 있음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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