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대한민국上] 세대·성별·계층·이념 갈등…혐오가 낳은 혐오들

입력 2018-10-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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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시작한 혐오는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pixabay)
▲온라인에서 시작한 혐오는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pixabay)

"아, 카페에 '맘충' 좀 안 왔으면." "'틀딱충' 때문에 피곤하다."

온라인 용어로 여겨졌던 'ㅇ충', 'ㅇㅇ충'이 일상 대화에 스스럼없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충(蟲)'은 '벌레 충'자다. 접미사 '충' 앞에 대상을 붙이면, '혐오(嫌惡)'한다는 의미가 된다.

문제는 'ㅇㅇ충'의 대상이 노인 일반, 유자녀 여성 일반, 아동 및 청소년 일반 등 주로 약자라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맘충'으로, 틀니를 착용한 노인은 '틀딱충'으로 깎아내려진다. 그들의 행동이 민폐로 인식되는 순간 재고 없이 'ㅇㅇ충'이라는 표현에 가둬버린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세대·인종·계층·지역 등을 가리지 않고 혐오 대상을 모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혐오표현이 담긴 온라인 게시글은 우리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보고서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응방안'에 따르면 2016년 1년간 온라인 상의 4대 혐오표현 게시물 8만1890건 중 여성 혐오 관련 게시물은 5만1918건에 달했다. 성소수자 관련 혐오 게시물은 2만783건이었다. 인종 관련 혐오 게시물은 2418건, 장애 관련 혐오 게시물은 6771건을 차지했다. 혐오 현상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수치다.

혐오와 성차별 표현이 확대·재생산될수록 혐오문화가 일상화되고 성별 갈등이 심화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7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6월 한달간 온라인 커뮤니티 8곳의 게시글 1600개와 댓글 1만6000개를 모니터링한 결과, 혐오·비난 표현이 담긴 게시글과 댓글 수는 135건(83.9%)에 달했다.

혐오·비난 유형은 특정 성에 대해 부정적 관념을 가지고 적대감을 드러내거나 신체 일부를 멸시한 욕설이 많았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좋은 아내 진단표를 만들어 봤다'는 게시글로 아내를 남편의 성적 도구의 대상이자 복종의 존재로 유형화 했다. 또 다른 커뮤니티는 "교통사고 당해도 통통 튈 거 같이 살쪘던데"라는 게시글로 외모에 대한 비하와 폭력성을 드러냈다.

양평원 관계자는 "온라인상 혐오표현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확대돼 사회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성차별적 언어와 혐오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지난 6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한 결과, 혐오·비난 유형은 특정 성에 대해 부정적 관념을 가지고 적대감을 드러내거나 신체 일부를 멸시한 욕설이 많았다.(자료제공=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지난 6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한 결과, 혐오·비난 유형은 특정 성에 대해 부정적 관념을 가지고 적대감을 드러내거나 신체 일부를 멸시한 욕설이 많았다.(자료제공=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온라인 혐오표현의 역사는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2015년에는 불쾌한 신조어 1위로 'ㅇㅇ충'이 뽑혔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성인 남녀 14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가장 듣기 불편한 신조어'로 '충을 붙인 각종 혐오 단어'를 꼽았다. 2위와 3위에는 각각 특정 지역 비하 신조어, 여성 혐오 단어가 꼽혔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김치녀'와 '김여사'같은 여성 비하 표현이 있다. 한국 여성 중에서 몰상식하고 이기적인 행태를 보이거나, "개념없다"고 생각을 보이는 이를 비하하는 단어로 '김치녀'가 쓰였다. '김여사'는 중년 여성들이 운전을 못한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혐오발언이다. '중년'이라는 개념이 빠지면서, 불특정 다수의 여성 운전자를 비하할 때 사용됐다.

이제는 남성이 이용자의 주를 이루는 남초 사이트에서는 '웜충(여성주의 커뮤니티 워마드 유저를 깎아내리는 말)'이, 여초 사이트에서는 '한남충(한국 남성에 벌레 충을 붙인 단어)'이라는 표현이 붙지 않은 글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김여사', '김치녀'라는 단어에 반감을 가진 이들은 '한남충', 'ㅇㅇ남'이라는 단어를 생성해내며 맞대응하고 있다. 이는 곧 남녀 갈등으로 번졌다.

혐오로 비롯된 갈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2016년 '혐오표현 실태와 규제방안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1014건의 온라인 조사 및 대면조사에서 "온라인 혐오표현으로 스트레스,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이주민 42.6%, 성소수자 43.4%, 기타여성 51%에 달했다.

일부 사이트에선 여혐·남혐 게시물을 원천 금지한다는 공지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자정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정부와 온라인 업계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모든 글을 때마다 모니터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가진 집단성이 온라인 공간에서 폭발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18일 이투데이와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지역·세대·성별간 양극화가 있어 왔다"며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인터넷에서는 군중심리가 심화하게 된다"고 밝혔다.

특히 익명성 안에서 온라인 공간에서 수위 조절은 더욱 어렵게 된다. 곽 교수는 "부정적인 표현은 더욱 부정적인 형태로 '상승효과'를 일으킨다"며 "누군가 부정적인 댓글을 달면, 다음 댓글은 더 심한 표현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프라인에서 정상적인 사람도 온라인에서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 높은 수위의 혐오 발언을 쏟아내기도 한다"며 "이에 대한 반응이 핑퐁처럼 이어지면서 굉장한 논쟁이나 싸움으로 치닫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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