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머니게임 놀이터가 된 상장사

입력 2018-09-2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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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자본시장부 기자

돌이켜보니 그동안 만난 업계 관계자 가운데 다음 달 상장폐지가 결정된 코스닥 기업들의 임원도 다수 있었다.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서 발생한 억울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분명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특히 관계사, 타 상장사 지분 투자 등으로 사실상 운영 주체가 같은 곳들이 눈에 띄었다. 이른바 ‘쩐주’를 모시는 바지사장님이다. 이번에 상장폐지가 결정된 A사를 취재할 때의 일이다. 최대주주가 바뀌면서 신임 대표이사로 왔고, 회사 분위기가 한층 젊어졌다고 자평했다. 그는 사업 다각화 명분을 내세워 자금 조달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새 경영진은 직원들의 기대와 달리 사업에 집중하는 대신 ‘머니게임’에 초점을 뒀다. 주력 사업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걸 외면한 채 유상증자, 메자닌 금융상품 발행 등에 몰두했고 회사 자금을 타 상장사에 사용하는 엉뚱한 짓을 반복했다. 결국 자금 지출과 관련해 내부 통제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상장폐지 결정까지 이어졌다.

상장폐지 후 대다수 기업은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고 영업 기반이 무너져 도산의 길로 들어선다. 투자에 실패한 주주들의 불만을 처리하는 것도, 일자리를 위협받는 것도 결국 남은 직원들의 몫일 테다. 각자 업무를 꾸려가던 직원들의 노력이 투자 차익만 계산하던 경영진의 실수로 인해 물거품이 된 것처럼 보였다.

물론 경영진은 적당한 몫을 챙기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자금 조달 방안을 설명하며 내세웠던 청사진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기업이 개개인의 일터가 아닌 돈놀이를 위한 도구로 훼손된다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일이다.

당시 회사 대표는 시장에 정보가 새어 나갈까 봐 직원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며 아이러니하게도 기자에게 내부정보를 귀띔했다. 그는 체질 개선을 언급했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서원들을 구조 조정한다는 의미였다. 회사에서 떠나기 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업무에 집중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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