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저를 소녀로 만들어요”…93세 화가의 고백

입력 2018-10-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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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화가’ 신금례 씨 인터뷰…93세부터 50대까지 한 자리에

“엘리자베스 여왕하고 내가 나이가 같아. 그림? 대학생 때부터 그렸지. 70년이 뭐야. 49년에 대학교를 졸업했어.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1회 졸업생이야.”

화가 신금례 씨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 국회 아트갤러리에서 열린 ‘한국여성미술인 120인 전’에 전시된 자신의 그림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1926년생인 신 씨의 나이는 93세다. “우리 서양화가 졸업생이 7명인데, 모두 그림을 그렸어. 지금은 다 죽고 두 명만 남았지만.” 신 씨의 작업실은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자택이다. 한편에 화실을 마련해 두고 여전히 붓을 잡는다.

▲'한국여성미술인 120인 전'에 '엉겅퀴'라는 이름의 작품을 내건 화가 신금례 씨. 신 씨는 93세로 120명 중 최고령 작가다.(김소희 기자 ksh@)
▲'한국여성미술인 120인 전'에 '엉겅퀴'라는 이름의 작품을 내건 화가 신금례 씨. 신 씨는 93세로 120명 중 최고령 작가다.(김소희 기자 ksh@)

이날 전시회는 신 씨의 열정을 다시금 일깨우는 데 도움을 줬다. 신 씨는 “지금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게 감사하고 고맙다”며 “후배 작가들도 꾸준히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그림을 그렸으면 한다”고 했다.

“내 마음은 늘 청춘이에요. 그림을 그릴 때 만큼은 나는 소녀거든요. 주로 야생화를 많이 그려요. 백일홍도 그리고, 엉겅퀴, 할미꽃을 많이 그려요. 날 보고 사람들은 ‘엉겅퀴 작가’라고 해.”

‘120전’에 작품을 내건 또 다른 화가 천영순(81) 씨는 ‘나비야’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작품 특성상 최 씨는 자신의 눈이 가장 소중하다고 했다. 최 씨는 “결혼하고 애 낳는 10년 동안 붓을 놨다”며 “손이 움직일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천영순 씨는 '나비야'를 출품했다.(김소희 기자 ksh@)
▲천영순 씨는 '나비야'를 출품했다.(김소희 기자 ksh@)

화가 최구자(77) 씨에게도 이날 전시회의 의미는 남달랐다. 최 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20년이 넘도록 붓을 잡지 못했다”며 “종갓집으로 시집을 가면서 일이 너무 많아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아이들이 대학에 간 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 씨의 작품명은 ‘자연과 공존(Nature-Coexistence)’. 그는 “여성 화가들은 결혼을 하면 대부분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며 “여성 화가들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날 행사의 의미가 깊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구자 씨의 작품명은 '자연과 공존'이다. (김소희 기자 ksh@)
▲최구자 씨의 작품명은 '자연과 공존'이다. (김소희 기자 ksh@)

‘맏언니’ 신 씨를 비롯해 한국의 여류 화가 120명이 참여한 이날 전시회의 분위기는 여고생들의 동창회를 연상케 할 정도로 화기애애 했다. 92세부터 5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 화가들은 서로의 작품을 소개하며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눴다.

‘한국여성미술인 120인 전’은 1일부터 한 달 동안 개최된다. ‘여권통문’ 발표 120년을 기념하고,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을 촉구한다는 의미로 기획됐다. 한국화가 45명, 서양화가 75명이 출품했다. 전시장 상황으로 인해 원로부터 40명씩 3부로 나누어 전시한다. 1부는 1~10일, 2부는 11~21일, 3부는 22~31일 개최된다.

▲전시회에 출품한 여성 화가들은 함께 사진을 찍으며 또 하나의 추억을 남겼다.(김소희 기자 ksh@)
▲전시회에 출품한 여성 화가들은 함께 사진을 찍으며 또 하나의 추억을 남겼다.(김소희 기자 k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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