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인도, 브라질,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BRICS) 정상들은 7월 말 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를 비판하면서 다자무역 체제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강한 경계심을 표출한 것이다.
트럼프는 일찍이 198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소재 사립대학인 리하이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국가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많은 나라가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존엄성을 박탈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트럼프의 무역에 대한 이런 시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아울러 트럼프는 미국이 무역에서 이렇게 다른 국가들에 패배하는 원인으로 WTO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다자무역 체제를 뒷받침하는 플랫폼을 지목했다. 그는 2016년 7월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WTO는 재앙”이라고 단언했다. 또 올해 8월 말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1990년대 WTO를 설립하기로 한 것은 최악의 합의였다”며 “WTO가 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탈퇴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는 대선 유세 당시 취임하자마자 TPP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실제로 그 말을 지켰다.
트럼프가 다자무역 체제를 없애려는 이유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포퓰리즘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포퓰리스트들은 자신의 권력과 통제를 벗어난 시스템을 싫어해 자신의 행동을 법적으로 제약할 수 있는 어떠한 종류의 다자간 기구에도 저항한다는 것이다. 경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다자무역 체제에 반대할 동기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파리 기후변화 협약에서 탈퇴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엔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트럼프의 최측근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지난해 3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에서 “WTO의 분쟁 해결 메커니즘이 미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국제협정이 늘어나면서 조약에 명시된 바를 훨씬 뛰어넘어 의무를 확대해 해석하는 기관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트럼프는 미국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양자 무역협상에 대한 선호를 숨기지 않는다.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국이자 수입국이어서 여러 나라가 견제하고 개입하는 다자 무역협정 대신 일대일로 맞붙으면 발언권이 더 강해져 협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전략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TPP와 같은 다자간 무역협상에 참여하지 않고 일대일 무역협정을 맺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무역 관계를 맺을 때 파트너들이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동등하게 시장을 개방하고 정부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간기업들이 직접 투자하기를 바란다. 그 반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올해 초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무기로 한국과 양자 협상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이끌어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인 멕시코, 캐나다와도 3자 회담 대신 양자 협의로 돌려 멕시코와는 8월 말 개정안 협상을 타결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TPP 복귀 요청은 무시하고 미일 FTA를 맺어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트럼프 정부가 선호하는 일대일 무역협상이 오히려 미국의 국익에 역행할 수 있다”며 “우리의 동맹국들과 훨씬 더 복잡한 무역협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