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미국 정부 위에 나는 중국 기업...관세 폭탄에 수출코드 위조 기승

입력 2018-10-09 04:49 수정 2018-10-09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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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국산 합판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지 7개월이 지난 6월 어느 날, 미국 오리건 주에 있는 목재 수입상 데이비드 비세는 한 공급업체로부터 중국산 합판 관세 면제를 원하냐는 전화를 받았다. 이에 비세는 “제품에는 미국 세관이 확인하는 식별 코드가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공급업자는 “그건 걱정 말라”고 했다. 중국 상표를 벗겨내고 다른 코드로 선적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미국에 들여오는 모든 제품에는 HTS코드라 불리는 10자리 숫자가 붙으며, 여기에는 총 1만8927개가 있다. 이 코드는 서로 다른 시장을 연결하고, 모든 종류의 상품을 식별할 수 있는 공통언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으로 관세 인상 품목이 늘면서 이 HTS코드를 이용한 꼼수가 활개치고 있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업자들이 관세 인상 부담을 피하기 위해 이 코드를 위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 경쟁에서 미국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무차별 관세 전쟁을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업자들이 제3국을 통한 환적 방식으로 관세를 피해오다가 최근에는 코드 오분류(code misclassification)를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WSJ에 따르면 지난 7월 미국 세관은 중국에서 온 수출품에서 코드 오분류를 146건 적발했는데, 이는 6개월 전보다 거의 3배나 늘어난 수치다. 미국 상무부 조사에서는 해외 덤핑 판매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자국 내 생산비용 이하로 해외에서 판매된 사례가 60%나 증가한 것. 미국 정부가 추가 관세 부과 품목을 늘릴수록 중국 업자들의 꼼수도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특정 제품이 고율 관세를 맞으면 아예 관세가 없거나 더 낮은 유사한 제품으로 코드를 바꾸는 식이다.

무역 관련 로펌 와일리 레인의 티머시 브라잇빌 파트너는 올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에 25%의 수입 관세를 부과한 후 중국산 강판은 터빈 부품으로 코드를 바꿔 수입됐다고 말했다. 이는 수치 상으로도 나타난다. 2018년 상반기에 철판 수입은 전년 대비 11% 감소한 반면 터빈으로 분류된 ‘전기발전 세트’ 수입은 121%나 늘었다.

또 중국에서 수입된 다이아몬드 톱날은 과거 미국 상무부의 덤핑 판결로 인해 82%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이에 7월에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업체 2곳이 관세 부담을 피하려 중국산 다이아몬드 톱날을 숫돌로 분류시켜 들여오다 적발됐다.

이런 식으로 관세를 회피하는 업계 관행은 ‘스위칭 BL’이라고 불린다. 이는 선적 서류 상의 원산지나 관세 코드, 혹은 두 가지 모두를 위조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업계 관행이긴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심화한 이후 더욱 활성화됐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중국 수출업체들은 알라바바그룹이 운영하는 ‘프렌즈 스루 커머스’같은 웹사이트에서 수입 코드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업자들의 이 같은 관행은 중국 정부의 표면적인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은 거짓 세관 신고를 금지하고 있다며 미국의 보호주의를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세관 당국은 중국의 대처가 못마땅하다. 한 미국 세관 관계자는 “중국의 법 체계와 중국에서 특정 업체를 찾는 능력은 우리에겐 도전 과제”라고 말했다.

미국 합판생산업계를 대변하는 변호사 브라잇빌은 “일부 중국 수출업자들은 단단한 목재 직면 합판을 즉시 조립 가능한 주방 싱크대 부품으로 코드를 바꿔왔다”고 지적했다. 이 영향으로 올 상반기 주방 싱크대 부품 수입은 1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합판은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가 10%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한 2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포함됐다. 미국 정부가 6월 매긴 500억 달러의 중국산 제품에도 포함됐는데, 더블 펀치를 맞은 것이다.

오리건의 목재 수입업자인 비세는 “전 세계적으로 무역전쟁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흔한지 모를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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