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 ‘골든 인도’ 가다③]국민은행, '역경의 열매' 진출史…윤종규 ‘올인’ 통했다

입력 2018-10-10 09:00 수정 2018-10-1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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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악몽’ 딛고 시장 개척

다행히 날씨는 화창했다. 평소엔 미세먼지 농도가 1000㎍을 넘나들어 숨쉬기 어렵다고 한다. 하루 담배 두 갑을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약 40km를 가면 고층 건물로 가득 찬 상업 도시가 나온다. 고도제한이 걸려 기껏해야 4층 건물이 다인 델리와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달 11일 인도 하리아나 주에 위치한 도시 구르가온(Gurgaon)을 찾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 판교같은 델리의 위성도시다. 이미 포화상태인 델리를 떠나온 삼성전자와 포스코 등 국내 기업들과 IBM 등 글로벌 기업들이 들어서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이곳 투호라이즌센터(Two Horizon Center)로 본사를 옮겼다. 1995년 인도에 진출한 지 20년 만이다.

투호라이즌센터는 구르가온의 랜드마크다. 이날 건물 주변에는 정장 차림의 20·30대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도엔 여전히 전통 옷인 ‘사리’를 입는 여성이 많지만, 이곳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다. 직원들 국적은 인도인부터 한국 등 동양인, 서양인까지 다양했다. 새롭게 떠오른 정보기술(IT) 중심지라는 것이 느껴졌다.

KB국민은행은 이 건물 2층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인도 서북부 지역 경제의 중심에서 영업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다. 사무실 임대를 마치고 리모델링과 현지 직업 채용 등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달 11일 국민은행 구르가온 사무소 앞에서 황일 사무소장, 강지표 차장, 신솔지 대리(왼쪽부터)가 파이팅을 외치며 현지화 전략 성공을 다짐하고 있다.인도(뉴델리·첸나이·구르가온)=이새하 기자 shys0536@·김보름 기자 fullmoon@
▲지난달 11일 국민은행 구르가온 사무소 앞에서 황일 사무소장, 강지표 차장, 신솔지 대리(왼쪽부터)가 파이팅을 외치며 현지화 전략 성공을 다짐하고 있다.인도(뉴델리·첸나이·구르가온)=이새하 기자 shys0536@·김보름 기자 fullmoon@

◇윤종규 ‘열정’ 통했다 = 국민은행의 인도 진출은 험난했다. 2012년 6월 뭄바이에 처음 사무소를 열었다. 그즈음 ‘카자흐스탄 악몽’이 시작됐다. 국민은행은 2008년 약 1조 원을 들여 카자흐스탄 뱅크센터크레딧(BCC)를 인수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아 사실상 전액 손실을 봤다. 다른 은행보다 국민은행의 해외 사업이 더뎠던 이유다.

지지부진하던 인도 진출은 2016년 3월 구르가온 지점 설립 인가를 신청하며 다시 시동이 걸렸다. 전 세계 기업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잠재력이 크다고 판단했다. 같은 해 5월 지점 설립 준비를 위해 사무소를 구르가온으로 옮겼다. 인가 승인도 2년 넘게 미뤄졌다. 인도 금융당국이 최종 단계에서 2013년 국민은행 도쿄지점 부실 사태를 문제 삼아 결정을 미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 금융당국 분위기는 지난 7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인도를 방문한 이후 달라졌다. 윤 회장은 같은 달 10~14일 문재인 대통령 인도 순방에 동행했다. 윤 회장은 당시 은행 지점 인가를 담당하는 인도 재무부 장관을 만났다. 콧대 높은 인도 당국이 외국계 금융회사 CEO를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윤 회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점 인가에 속도를 내달라고 직접 설득했다고 한다. 당시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현지 관계자를 만나고 눈코 뜰 새 없는 일정을 소화했다는 후문이다.

국민은행은 올해 7월 초 인도중앙은행 예비인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말 최종 인가를 신청해 사실상 마무리 단계다. 최종 인가는 인력과 시설 등 인프라만 갖추면 획득이 무난하다. 황일 국민은행 구르가온 사무소장은 “CEO와 장관과의 만남이 지점 인가에 주효했다”며 “내년 초 구르가온 지점 개점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국민은행만의 길 간다 = 지점 전환 고비를 넘었지만, 국민은행 앞에 놓인 과제는 산더미다. 규제가 강하고 국영은행 중심으로 짜여있는 인도 금융시장에서 살아남긴 쉽지 않다. 국민은행은 앞서 진출한 다른 은행 뒤를 좇기보단 인프라 금융, 현지 디지털뱅킹 구축 등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전략을 펴기로 했다.

우선 기업금융에 집중한다. 삼성과 LG 등 국내기업과 기술력을 갖춘 탄탄한 인도 현지기업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계획이다. 서두르진 않는다. 급하게 하다가 탈 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 영업 특성상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으로 보고 있다.

인프라 금융도 관심사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인프라 구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모디 노믹스’를 추진하고 있다. 향후 5년간 1조 달러 투자가 예상되는 시장이다. 홍콩과 본점 IB(Investment Banking) 담당과 협력해 신디케이션 론(집단대출) 등 인프라 금융시장에 참여한다.

장기 목표는 ‘현지화’다.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수신, 외환 업무 등 소매금융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구르가온 지역 특성상 우량기업 근무 직원 등 고소득자와 고액자산가가 많아 이들을 대상으로 자산관리(WM) 부문에 집중한다. 최근 업무협약을 맺은 인도 2위 국영은행 ‘바로다은행(Bank of Baroda)’과 공동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지점 5400여 개, 직원 5만2000여 명에 이르는 초대형 은행이다. 바로다은행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신디케이션 론에 참여하고, 고객에게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특히 디지털뱅킹은 현지화 전략 중 하나다. 윤 회장은 지난 인도 방문 당시 직접 싱가포르개발은행(DBS)과 회의를 열어 디지털뱅킹 전략을 논의했다. DBS는 인도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 가운데 성공적인 디지털뱅킹을 들여왔다고 평가받는다. 단순히 한국에서 사용하는 디지털뱅킹을 들여오는 게 아니라 현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은행뿐만 아니라 지주 사업을 뒷받침 할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인도 시장에서 많은 규제를 감당해야 하는 법인 설립보다 속도를 낼 수 있는 지점 확대를 큰 방향으로 잡았다. ‘최소한의 네트워크로 가장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목표다. 황 소장은 “벵갈루루, 뭄바이, 첸나이, 푸네 등을 다음 지점 후보 지역으로 검토 중”이라며 “내년 2월쯤 구르가온 지점을 열고 지점 2개의 인가를 추가로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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