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방문한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최대 도시 첸나이(Chennai)는 낮 최고기온 35도를 넘나들었다. 그나마 더위가 한풀 꺾인 거라고 했다. 하지만 10분만 걸어도 쏟아지는 햇볕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첸나이엔 사계절이 있지만, 평균 최저기온이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다.
첸나이는 최근 빠르게 변한 수도 뉴델리 등 북인도와 달리 여전히 전통을 중시하는 도시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한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는 북인도와 달리 여전히 전통 옷을 입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여성은 ‘사리’, 남성은 ‘도티’를 즐겨 입는다. 북인도와 겉모습도 다르다. 상대적으로 작은 체형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드라비다인이다.
이곳은 현대차의 도시이기도 하다. 1996년 인도에 진출한 현대차는 1998년 이곳에 공장을 세웠다. 외국계 기업 최초라고 한다. 지난해 50만 대 이상 차량을 판매해 인도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했다.
KEB하나은행은 현대차를 따라 첸나이로 왔다. 인도 첫 지점이었다. 탄탄한 한국기업을 기반으로 현지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였다. 2015년 2월 개점한 뒤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최근 대출자산 2억 달러(약 2260억원)를 달성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 강한 외환은행 장점 살려 = 하나은행 인도 진출 역사는 2015년 9월 합병 전 외환은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은행은 외환은행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외국환거래 노하우를 흡수했다.
외환은행은 2015년 2월 첸나이에 지점을 처음 냈다. 1996년 인도에 처음 진출한 신한은행과 비교하면 약 20년 뒤졌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10여 년 전부터 꼼꼼히 시장조사를 하며 기반을 쌓아온 것을 알 수 있다.
외환은행이 인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2008년이었다. 뉴델리에 사무소를 내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2년간의 시장조사를 걸쳐 2010년 10월 인도중앙은행(RBI)에 첸나이 지점 인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대주주였던 사모펀드 론스타 이슈가 발목을 잡았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여 2012년 4조6000억 원에 팔아 ‘먹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RBI는 인가 과정에서 투명한 지배구조를 중요시한다. 결국 2014년 7월에서야 최종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신청한 지 약 4년 만이었다.
시작은 늦었지만 하나은행은 외환은행의 노하우와 전문가를 기반으로 금방 자리를 잡았다. 첸나이 지점을 맡은 이용효 지점장은 1996년 외환은행 지역전문가 연수로 인도에서 1년 동안 공부했다. 그 뒤 바레인 지점, 인도 뉴델리 사무소, 본사 글로벌 사업부 등을 거친 글로벌 전문가다.
하나은행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인도 지점을 확대한다. 상반기 초 개점 예정인 구르가온 지점이 첫 목표다. 하리아나주에 있는 도시 구르가온은 경제 중심 도시다. 삼성전자와 두산중공업 등 한국기업은 물론 IBM 등 글로벌 기업이 들어서 있다. 이후 인도 남부 금융 도시 뭄바이와 벵갈루루 지점 인가를 동시에 신청하는 방안을 RBI와 협의할 계획이다.
◇‘수익 다변화’는 필수… IB와 WM에 집중 = 첸나이 지점은 최근 투자금융(IB) 현지 전문가를 채용했다. 앞으로 2~3명을 더 뽑아 IB팀을 만들려고 한다. 새로 생길 구르가온 지점에도 IB 담당자를 둘 계획이다. 국내기업을 대상으로 한 영업은 이미 ‘레드오션(경쟁이 치열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현대차와 그 협력업체 등 자동차 산업에 편중된 영업 포트폴리오 다양화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용효 하나은행 첸나이지점장은 “그동안 한국계 은행이 한국기업 거래 등 단순 업무에 너무 치우쳐 있던 것 같다”며 “우리도 성장이 조금 정체되는 것 같아 차별화된 비즈니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IB로 눈을 돌린 이유를 설명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인프라 구축 등 ‘모디노믹스’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유다. 앞으로 5년간 1조 달러 투자가 예상된다.
최종 목표는 ‘현지화’다. 우선 탄탄한 현지 중견기업을 상대로 한 영업을 늘려나간다. 현재 첸나이 지점의 현지 기업 대출자산은 1000만 달러로, 전체의 5%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 비중을 점차 높일 계획이다. 외환은행 강점을 살려 한국과 거래하는 인도 기업을 고객으로 삼아 무역금융 등도 한다. 무역금융은 수출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이다. 역외금융(해외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해외 거래처에 대출해주는 금융방식)도 관심사다.
소매금융(리테일)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 디지털 뱅킹을 도입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기술력이 뛰어난 인도계 은행이나 역사가 오래된 외국계 은행과 경쟁하려면 디지털 뱅킹이 필수라고 봤다. 우선 한국기업에 종사하는 현지 노동자가 첫 타깃이다. 이 지점장은 “현지인 수요는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아직 못하고 있다”며 “정보통신(IT) 기술을 업그레이드한 뒤 단계적으로 현지인을 고객으로 유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자산관리(WM) 업무도 검토하고 있다.
인도에 진출해 있는 하나생명과 하나카드 등 다른 계열사와 협업도 강화한다. 지주회사 차원에서 비은행권 인수합병(M&A)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화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지점 현지 법인 전환도 검토할 계획이다. 몸집을 키우려면 인수합병이 필요한데, 외국계 은행으로선 RBI 승인을 받기 쉽지 않다. 높은 법인세와 전체 이사회 구성원의 절반 이상을 현지인으로 채워야 하는 등 현지 법인의 규제도 만만치 않다. 이 지점장은 “앞으로 규제 완화 정도를 봐서 중장기적으로 현지 법인 전환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