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정감사가 벌써부터 ‘보여주기식 국감’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는 사실상 첫 국정감사임에도 여야 모두 핵심을 찌르는 이슈를 만들지 못한 데다 상임위원회 곳곳에서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3일간의 국감에서 기억나는 장면은 선동열 야구 감독·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벵갈 고양이 정도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우선 ‘네 탓 공방’과 소모적인 ‘기 싸움’이 여전했다. 특히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10일)·헌법재판소(11일)·법무부(12일)국감은 파행을 거듭했다.김명수 대법원장의 과거 공보실 비용 사용과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비판 및 ‘강정마을 주민 사면 검토’ 발언을 두고 고성이 오가는 등 난장판이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감사 전 의사 진행 발언을 통해 “강정마을 사건은 아직 재판도 안 끝났다. 이런 사건에 대해 사면 복권을 논하는 것은 재판을 무력화하고 사법부를 기망하는 행동”이라며 “사면 주무 부서인 법무부 장관의 확고한 입장을 듣고 시작했으면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의사 진행과 무관한 발언”이라며 위원장에게 제지를 요구했고,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정회를 선포했다. 정무위원회의 국감도 민병두 정무위원장 비서관의 금융위원회 특혜채용 의혹을 놓고 민 위원장 사퇴 공방을 벌이는 등 파행했다.
자극적인 소품과 유명인사를 내세운 ‘눈요기’ 국감은 올해도 계속됐다.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정무위 국감에서 9월 동물원을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에 대한 질의를 한다며 국감장에 벵갈 고양이를 데려왔다 ‘동물 학대’라는 역풍을 맞았다. 같은 당 박대출 의원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장에 암세포 사진을 활용한 대형 현수막을 걸어 논란이 일었다. 송희경 의원은 ‘라돈 측정기’를 들고나와 시연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에선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대한 엉뚱한 질문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사과를 하든지 사퇴를 하든지. 이렇게 버티고 우기면 2020년까지 가기 힘들다”, “돈(연봉)이 KBO에서 나오기 때문에 아마추어 야구에는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 등의 질문을 했다가 핵심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참고인으로 나온 요식 사업가이자 방송인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시종 소신 발언을 쏟아내 주목을 받았다. 백 대표는 골목상권 활성화 대책을 묻는 질문에 “미국은 식당을 열려면 1-2년이 걸리는데 우리는 너무 준비없이 창업한다”며 “‘골목식당’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준비 안 된 창업을 하지 말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백 대표 가맹점이 손님을 뺏어간다’는 지적에는 “가맹점주를 잘 키워 돈 벌게 하는 것인데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소상공인의 애로사항을 듣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국감에는 부적합한 인사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갑질’ 국감도 여전했다. 증인·참고인을 상대로 “도박을 하지 않았냐”, “연봉이 얼마예요”라는 등 감사와는 상관없는 개인신상에 대한 질의로 증인 등을 당황케 하는 장면도 이어졌다.
반면 차분하게 정책 질문을 이어가 좋은 평가를 받은 의원도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고양 저유소 탱크 폭발 사고와 관련해 고용노동부의 안전 점검 부실을 질타하는 과정에서 당국의 유의미한 조치를 이끌어 냈다. 한 의원은 노동부에 “2014년 이행상태 점검 당시 완벽하게 되지 않았다. 모든 통기구에 화염 방지기를 설치했다면 폭발 사고는 없었다”고 지적해 당국이 “살펴보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과방위 소속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구글은 세계 각국의 조세법을 어겨가며 수치스러운 장사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고,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의 조세회피 논란과 관련해 정부 합동조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