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등 물가 급등으로 서민들의 주름살이 늘고 있는 가운데 주유소간 경쟁을 통해 기름값을 내리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정부는 주유소 상표표시제 고시 폐지를 통해 자연스럽 경쟁을 유도해 기름값을 내린다는 방침이지만 소비자단체 및 정유사들이 품질 문제를 들어 고시 폐지에 유보적이기 때문이다.
21일 소비자단체 등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상표표시제 고시를 폐지키로 한 것에 대해 '품질 문제시 책임 소재를 따지기 어렵다'며 유보적 입장을 내비쳤다.
상표표시제 고시란 주유소들에 사실상 특정 정유사 '폴 사인'을 세워 석유제품을 팔도록 한 공정위 고시를 가리킨다.
4월말 현재 전국 1만1931개 주유소 가운데 복수 정유사 제품을 파는 무상표(무폴) 주유소는 403개뿐이다.
공정위는 '폴 사인' 제도로 인해 '정유사-주유소'로 이어지는 독과점적 시장이 형성돼 막대한 이익을 향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이를 폐지, 경쟁체제로 전환시켜 기름값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소비자단체들은 기름값 인하 방안에는 환영하면서도 품질 저하를 이유로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휘발유나 경유의 경우 가격뿐만 아니라 품질도 중요하기 때문에 품질 경쟁을 유도하는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상표표시제 고시가 폐지되면 기름 품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느 정유사 제품인지 따지기 어려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게 반대 이유다.
소비자단체의 뜻하지 않은 반대에 당황한 것은 주유소업계다.
지금도 상당수 휘발유 석유제품은 정유사간 교환한 뒤 첨가제를 넣어 파는 현실이라는 게 주유소업계의 주장이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주유소들이 여러 정유사의 제품을 자유롭게 거래하지 못해 가격경쟁이 어렵다"고 전제하고 "품질 또한 주유소들이 생존을 위해서는 철저히 관리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소비자단체의 이러한 반응에 정유업계는 내심 반기고 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도 "현재 주유소들은 정유사별로 별도의 기름을 보관할 수 있는 주유 탱크를 보유하기 힘들다"면서 "상표표시제 고시가 폐지되면 각 정유사별 기름이 섞이게 품질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상표표시제 고시 폐지로 '갑(정유사)-을(주유소) 관계'가 약해지는 데 내심 불만이 컸던 정유업계는 평소 앙숙이던 소비자단체의 '지원(?)'을 뜻하지 않게 받게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