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마흔세 살에 우리 지연이를 얻었잖은가. 내 인생에서 자식이란 존재는 아예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기적처럼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아이가 바로 지연이라네. 한겨울 산속을 헤매다가 갑자기 만난 공터처럼, 그 공터에 내리쬐는 햇살처럼, 지연이로 인해 나와 아내를 둘러싼 세상 모든 것의 색깔이 바뀌고 변해버렸지. 그게 벌써 십일 년 전 일이라네. 아내와 함께 운동도 열심히 하고 나쁜 생각도 갖지 않고, 험한 말도 입에 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한 세월이었다네. 부모 마음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아이한테 최선은 몰라도 최악은 되지 말아야지, 적어도 아이 앞길에 방해는 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으로 지내온 십일 년이었다네. 지연이가 대학에 들어가면 내 나이는 예순두 살, 지연이가 서른 살이 되면 내 나이는 일흔세 살. 혼자 그런 계산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먹먹해지고 저절로 짠해졌지. 그게 어디 내가 불쌍해서였겠나? 지연이가 혹여 너무 이른 나이에 기댈 나무 둥치를 잃을까 봐, 괜한 부모 병치레로 허튼 힘을 빼앗길까 봐, 그게 염려돼서 그랬던 게지. 나는 이제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더구만.
그래도 좋은 세월이었다네. 지연이와 나는 제법 사이가 좋은 아빠와 딸이었지. 엄마는 자주 잔소리하고 야단치는 역할이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네. 늘 좋은 말만 하고, 항상 웃는 얼굴만 보여주고 싶었다네. 그러고도 부족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이 엄마는 반대했지만, 나는 지연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바로 스마트폰을 사주었다네. 지연이가 그걸 원했으니까.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태블릿PC도, 바이올린도, 해외직구로만 살 수 있는 책가방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그때그때 사주었다네. 전문대학 시설과 팀장 월급이라는 것이 뻔한데도, 그래도 아깝지 않았네. 초과근무수당 아끼고, 연차수당 받고, 내 옷이나 신발을 사지 않으면, 그러면 얼추 맞아떨어졌으니까. 내가 제일 좋아했던 시간이 뭔 줄 아나? 지연이와 단둘이 노래방에 가는 거였네. 거기에서 둘이 소파 위에 올라가 말도 안 되는 춤을, 가사도 음도 제대로 못 맞추는 노래를 부르면서, 추는 거였다네. 지금도 내 휴대폰에는 그때 지연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동영상으로 담겨 있다네. 어쩌면… 그게 시작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내가 좀 실수를 한 게 있다네. 지지난달이던가, 내가 지연이 앞에서 오빠들 잠실주경기장에서 하는 콘서트 티켓을 끊어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가… 지연이 앞에서 직접 노트북을 켜고 티케팅을 하다가 그만… 내 오래된 노트북이 제때 부팅되지 않는 바람에… 티켓 예약 홈페이지에 가보지도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네.
“아빠나 아빠 노트북이나 다 똑같네, 뭐.”
지연이는 그렇게 말하곤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네. 늙은 아빠와 늙은 노트북. 거기에 비해 너무 젊은 오빠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그날 그렇게 폭발했는지도 모르겠네. 지연이 방문 앞에 서서 그렇게 소리 지른 것인지도 모르겠네…
“아빠 늙은 게 아빠 잘못이야? 아빠 잘못이냐구!”
그래서 내가 지금 자네에게 이렇게 부탁하고 있는 거라네. 지연이의 마음이 아직도 풀리고 있지 않으니… 자네가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네… 마침 그 오빠들이 자네가 사는 도쿄에서도 콘서트를 연다고 하니, 어떻게 좀… 표를 구해줄 수가 없겠나? 거기라도 가면 지연이가 좀 마음을 열 것도 같은데… 그 오빠들 콘서트하는 파리나 런던이나 동남아보단 그래도 도쿄가…
이 사랑이 이게… 보통 사랑 같아 보이지 않아서 하는 부탁이라네… 보통 아이돌이 아니라네.
소설가·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 월 1회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