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 속에서 술처럼 많은 이야기를 달고 다니는 게 또 있을까? 엉뚱한 실수,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결심,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사람들은 또 술을 마신다. 기뻐서 마시고, 슬퍼서 마시고, 사는 게 힘들어서 마시고…. 역대의 시인들도 술에 관한 시를 안 쓴 시인이 없다. 이백, 두보, 백거이, 정철, 송순, 윤선도…. 중국, 한국, 가릴 것 없이 시인들은 수없이 많은 ‘술’ 시를 지었다.
지난여름은 너무 더워서 삶이 힘들어도 술마저 마실 수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활의 활력소로 얼마간의 술이 필요한데 너무 더운 날씨 탓에 몸이 술을 감당하지 못하여 술마저 마실 수 없었으니 스트레스가 더 쌓일 수밖에.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정말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는 것일까?
술을 마주하고서 지은 시 가운데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의 시만큼 음미할 맛이 깊은 시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는 인생 자체를 ‘달팽이 뿔’ 위에서 살고, ‘부싯돌 불’에 맡긴 처지라고 여겼다. 그래서 “와우각상쟁하사 석화광중기차신(蝸牛角上爭何事 石火光中寄此身)”이라고 읊었다.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로 다투시는가? 부싯돌 불에 부친(맡긴) 이 몸인데”라는 뜻이다.
달팽이 뿔, 즉 더듬이는 매우 예민하여 손을 댔다 하면 순식간에 움츠러든다. 부싯돌의 불 또한 찰나만 반짝한다. 달팽이 뿔, 부싯돌 불빛처럼 짧은 인생인데 그 속에서 뭐 그리 다툴 일이 많으냐는 게 백거이의 생각이다. 그러니 술이나 한잔하면서 미움도 원망도 슬픔도 아픔도 다 내려놓자는 것이다.
이 정도 생각이라면 굳이 술을 마셔야 할까?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이미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버렸을 것 같다. 우리도 이렇게 마음 한번 고쳐먹음으로써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일이다. 꼭 술을 마시려 들지만 말고. 蝸:달팽이 와, 牛:소 우, 蝸牛: 달팽이, 角:뿔 각, 爭:다툴 쟁, 寄:부칠 기, 此:이(this)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