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공정거래-Law] 후려치는 갑(甲), 담합하는 을(乙)

입력 2018-10-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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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바른 공정거래팀 전승재(35·변호사시험 3회) 변호사(사진제공=법무법인 바른)
▲법무법인 바른 공정거래팀 전승재(35·변호사시험 3회) 변호사(사진제공=법무법인 바른)

원사업자(甲)와 수급사업자(乙)가 하도급계약을 체결하기까지의 밀고 당기기는 각자의 생존을 건 치열한 게임이다.

원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적정한 가격에 믿고 일을 맡길만한 수급사업자를 찾고자 한다. 수급사업자가 제시한 견적이 적정한지는 항상 의문이다. 그렇다고 싼 값을 부르는 다른 수급사업자에게 일을 맡기자니 수행능력을 믿을 수 없다.

수급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적정한 가격에 일감을 찾고자 한다. 그런데 원사업자는 항상 가격을 후려친다. 때로는 실적을 쌓기 위해 적자 수주도 감수한다.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 후보들을 모아 입찰에 부친다. 그런데 수급사업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담합을 하는지 최저입찰금액이 여전히 높다. 재입찰을 여러 번 해봐도 최저입찰금액이 예산 범위내에 들어오지 않는다. 최저입찰자를 불러서 네고를 한다. 최저입찰자와의 네고가 실패하면 차순위 입찰자를 부른다. 그렇게 결정된 가격은 밀고 당기기의 산물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건의 공정거래법 위반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수급사업자들이 모여 낙찰자와 가격을 미리 정해두고 들러리를 세우면 담합이다. 심지어 서로 어떤 입찰에 들어가서 얼마를 쓸지 정보교환을 해도 담합이 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 실무가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경쟁사끼리 눈만 맞아도 담합이다."

한편, 원사업자가 최저입찰금액을 감액해서 계약을 체결하면 하도급법 위반이다. 물론 예산을 합리적으로 수립했다는 정량적 근거를 갖추고, 최저입찰금액이 예산 범위 내에 들어와야 낙찰을 받을 수 있다는 절차를 투명하게 운영했다면 합법이 될 여지는 있다. 그러나 그런 항변에 성공한 원사업자는 실무상 드물다.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서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시장원리에 의해 이상적인 가격이 결정되겠지만, 현실은 대체로 그렇지 못하다. 시장의 실패를 규율하기 위해 경제법이 존재한다. 법률은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교정적 정의'를 추구한다. 손해배상 제도가 이 이념에 기초한다.

법률은 '절차적 정의'도 추구한다. '경쟁사끼리 눈 맞으면 담합이다', '최저입찰금액 깎으면 위법하다' 이렇게 법률행위의 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절차적 정의'에 가깝다.

'교정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에 따른 결과가 반드시 서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원사업자가 구매독점자이거나 정보력이 풍부해서 수급사업자들이 아무리 공동대응을 해도 가격 후려치기를 당할 때가 있다. 또는 수급사업자들이 공고한 과점을 형성하고 있어서 원사업자가 최저입찰금액을 아무리 네고 해도 소용없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교정적 정의'를 우선한다면 법률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편에 서서 가해자에게 법적 책임을 지울 것이다. 반면에 '절차적 정의'의 관점에서는 양쪽 모두 절차를 어겼으니 피해 여부와 관계없이 둘 다 제재할 수 있다.

폭행과 같이 행위 자체가 나쁘다면 쌍방 폭행한 양쪽 당사자를 모두 제재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사이의 밀고 당기는 과정 자체가 나쁜 것일까. 굳이 양쪽 모두를 가해자로 취급해야 할까. 정답은 없는 문제다. 다만, 어느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법적 판단의 결과는 분명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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