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풀려난 신동빈, 그 뒤에 남은 궁금증

입력 2018-10-2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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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들의 재판을 보다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이들의 혐의는 대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배임·조세포탈, 뇌물공여죄로 좁혀진다. 기업의 돈을 몰래 빼돌리고, 기업에 손해를 입히고, 눈앞의 이익을 좇으려 정계와 유착하는 등 혐의의 규모와 형태는 달라도 '기업을 사유화한 결과'라는 범죄의 성격은 같다. 이들이 실형을 피하려고 늘어놓는 변론 내용도 비슷하다. 하루빨리 경영에 복귀해 나라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것. '기업인으로서의 사명감'이다.

경영 비리에 이어 국정농단에 연루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심 재판에서 그 사명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다고 해도 집행유예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 측 변호인은 "큰 규모의 투자는 최종 책임자의 결단이 필요한데 최종 책임자가 없으니 파격적인 해외 투자 제안을 받아도 눈치만 보고 있다. 투자가 안 되니 신규채용도 어려운 상황이다"라며 재판부에 호소했다. 신 회장도 "그룹이 내수시장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고전 중이고, 특히 중국 시장에서는 사드 때문에 사업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신 회장의 2심 재판부는 1심 실형 선고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제3자 뇌물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지만, 신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그를 풀어줬다.

4300억 원대 횡령ㆍ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게 해달라며 보석을 청구했고, 재판부에 "잘못된 건 시인하고 바로잡은 후 직원들을 다시 일깨워 제자리를 잡아주면 이번에 한 번 혼났기 때문에 부영이 다시 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회장직에 복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검찰은 "역사상 재벌 오너들이 구속됐을 때 기업은 쓰러진 적 없다"며 "이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적 경영에 대한 사고"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회장의 보석 청구를 받아들였다.

기업인들의 간곡한 변론을 빌리자면, 그들만큼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존재도 없다. 그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이들이 기업을 위기에 빠뜨리고 뒤늦게 사명감을 강조하며 선처를 호소한 꼴이다. 한 마디로 괘씸하다.

신 회장의 석방으로 이제 구속 수감된 유력 재벌 총수는 한 사람도 없다. 기업과 나라 경제를 위해 제자리로 가야 한다던 그들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 것. 기업은 얼마나 살아나고 경제는 또 얼마나 활기를 찾을까. 그것이 그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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