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유튜브에 뜬 뱅크시의 유쾌한 가치증명

입력 2018-10-2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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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유튜브에 영국 아티스트 뱅크시의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그는 이달 초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되자마자 갑자기 ‘셀프 파쇄’되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의 작가다.

뱅크시가 공개한 영상에는 그림의 파쇄가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상세히 담겨 있다. 액자 안에 파쇄기를 조립해 넣는 제작 과정에 이어 경매장 현장에서 리모컨의 버튼을 눌러 숨겨진 파쇄기를 동작시키자 놀라는 관중들의 반응까지 세세히 비춘다. 마지막에는 사전 리허설 장면을 보여주면서, 애초의 의도는 절반만이 아니라 전체를 파쇄하려 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경매품으로 나온 ‘풍선과 소녀’는 전화로 참여한 경매자에게 104만 파운드(약 15억4000만 원)에 낙찰됐다. 이후 그림은 절반이나 찢겨 나갔지만, 낙찰자는 낙찰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술계 역사상 희대의 장난이 더해진 작품이 되자, 아마도 낙찰자는 엄청나게 높아진 가치를 기뻐하며 침대 위를 뛰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가 뱅크시나 소더비와 관계있는 자일지도 모를 일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했던가. 뱅크시는 24일 프랑스 파리 아트큐리얼에서 ‘검문검색(Stop and search)’이라는 석판화를 경매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가 경찰에게 검문받는 장면을 석판으로 찍은 작품이다. ‘검문검색’의 경매 시작가는 ‘풍선과 소녀’와 비슷한 수준인 3만 유로(약 3900만 원). 낙찰 가격이 얼마나 올라갈지 알 수 없지만, 지난번 소동의 영향을 받을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번에도 깜짝 퍼포먼스가 있지 않을까’라는 세간의 기대감도 분위기를 띄우는 요소다. 경매 좌석은 순식간에 매진됐고, 전 세계 언론사가 현장을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도만 놓고 본다면, 이미 뱅크시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듯한 모습니다.

가치의 정의는 무엇일까. 과거 미술 작품의 가치는 캔버스 위나 성당의 벽, 또는 석고나 철판 등으로 만들어진 ‘조형물’ 자체에 있었겠지만, 지금의 가치는 좀 더 복잡해진 듯하다.

일상용품이나 기성 제품도 의미만 부여하면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레디메이드(ready-made)’의 창시자 마르셀 뒤샹(1887~1968)의 대표 작품 ‘샘(Fountain)’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샘’은 평범한 남성용 소변기를 사서 ‘R. Mutt 1917’이라고 서명만 한 작품이다. 1917년 뉴욕의 독립미술가협회 전시에 출품하려다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82년이 지난 1999년 소더비 경매에서 무려 1700만 달러(약 192억 원)에 낙찰됐다.

주목할 것은 경매에 나온 소변기가 1917년에 제작된 원본이 아니라는 것. 원본은 이미 분실한 지 오래였고, 경매품은 1964년에 만든 8번째 작품이다. ‘샘’은 현재 17개의 복제품이 전 세계에 전시되고 있는데, 당시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었던 대량 생산제품인 만큼 ‘복제품’이라는 단어조차도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이는 한 작가가 미술사적으로 의미를 인정받고 나면 시장의 가치가 얼마나 무섭게 올라가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또 한편으로는 과연 미술품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마트 직원이 세제 박스를 쌓으면 세일 품목이 되지만, 앤디 워홀이 쌓으면 ‘하얀색 브릴로상자들(white Brillo boxes·1964)’이라는 작품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가치 상승을 위해 의도적으로 화제나 논란을 만들려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튀고 싶은 정치인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한마디, 잊혔던 연예인의 과거 폭로, 인기 칼럼니스트의 막말, 인기 BJ의 욕설 방송 등등.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하던가. 악플도 쌓이다 보면 대중에게 각인되어 인지도로 이어진다는 논리일지도 모른다.

앞서 거론한 뱅크시의 경매장 사건은 돈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자 조롱이다. 뱅크시는 과거에도 미술 작품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래되는 경매 현장을 작품을 통해 비꼰 바 있다. 화제를 위한 화제, 논란을 위한 논란이 아니라 철학이 있는 유쾌한 소동이자 가치 증명이었다. 현재 우리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뒤흔드는 것들의 가치는 어떤가.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 불쾌해야 할까.

▲뱅크시는 18일 유튜브에 'Shredding the Girl and Balloon - The Director’s half cut'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이 영상에서는 준비 작업과 낙찰과 동시에 파쇄된 경매장의 장면, 사전 리허설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출처=유튜브)
▲뱅크시는 18일 유튜브에 'Shredding the Girl and Balloon - The Director’s half cut'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이 영상에서는 준비 작업과 낙찰과 동시에 파쇄된 경매장의 장면, 사전 리허설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출처=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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