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재계에서는 올해 8월 입법예고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SK그룹에 가져올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SK그룹의 경우 그룹 내 순환출고리는 부재하며 공익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 역시 미미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SK그룹은 계열사를 정리하고 중간지주사 설립을 고려하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SK그룹의 일련의 조치들이 법안 개정 등 외부 요인보다는 그룹 자체적인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SKT를 중간지주사로…계열사 처분 ‘마무리’ 단계 =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이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에는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에 나설 예정이다.
SK그룹 측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는 입장이나, 최근 SK그룹의 행보를 고려하면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은 시기상의 문제라는 것이 대다수 의견이다. SK그룹은 9월 부동산 개발회사인 SK D&D의 지분 일부(3.5%)를 사모펀드에 매각한 것을 시작으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을 통해 SK해운을 사모펀드에 넘겼으며, (주)SK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SI 기업 SK인포섹도 SK텔레콤에 넘기기로 최근 결정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전에 관련 계열사 지분 정리가 끝날 모양새다. 이제 남은 회사는 SK임업뿐이다.
재계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는 SK그룹의 발 빠른 대처는 SK그룹의 계열사 정리가 단순히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딥체인지(Deep Change·근본적인 변화)’를 실행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SK해운만 하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어닥친 해운업 불황으로 인해 매년 경영 실적이 악화하며 한때 부채 규모가 5조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에 SK그룹은 물적분할은 물론 사업 구조조정에까지 나섰으나, SK해운의 경쟁력 회복은 요원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경우 SK그룹이 지게 될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된다. 결국 SK그룹은 36년 만에 해운업 철수를 결정하며 SK해운을 매각했다.
◇‘최대 실적’ SK하이닉스를 위한 개편 =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편 역시 같은 선상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사실 SK텔레콤이 중간지주사 전환에 나설 경우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라 신규 지주사 전환에 나서는 그룹은 의무적으로 자회사 지분율을 현행 20%에서 30%까지 늘려야 한다. 비용 소요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SK그룹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미래 먹거리로 꼽고 있는 ICT 기반 종합 플랫폼 기업으로 SK텔레콤이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업분할을 통한 중간지주회사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SK그룹의 주력 기업으로 떠오른 SK하이닉스의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서도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은 필요하다.
SK하이닉스는 SK㈜의 손자회사로 현행법상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M&A를 실행하려면 피인수 기업 지분을 100% 소유해야 한다. 때문에 SK하이닉스는 사상 유례없는 호황 속에서도 M&A 등을 통한 사업 확장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이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SK텔레콤이 인적분할 후, 분할신설법인을 ㈜SK와 합병해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를 자회사로 편입시켜야 한다. 그러나 부작용이 크다. 합병 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지주회사 지분 희석이 불가피한 데다 주주를 설득하는 과정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에서는 SK텔레콤이 물적분할을 통해 중간지주회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중간지주회사로서 투자부문(중간지주)과 사업부문(SK텔레콤)으로 물적분할한 뒤 투자회사가 SK하이닉스를 소유하는 구조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SK텔레콤이 최대주주로 있는 SK플래닛과 SK브로드밴드가 각각 공정공시와 조회공시 등을 통해 사업분할을 고려하는 등 그룹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일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향후 물적분할 방식으로 SKT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