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서부영화 중에 ‘석양’ 시리즈가 있었다. ‘석양의 무법자’, ‘석양의 총잡이’ 등이다. 그런가 하면 국내에서는 ‘황혼’ 제목이 붙은 노래가 유행하였다. 우리 가요사상 불후의 샹송가수인 최양숙의 ‘황혼의 엘레지’, 영원한 트롯의 여왕 이미자의 ‘황혼의 브루스’ 등이 그런 노래다. 4일 타계한 배우 신성일 주연 영화에도 ‘내 청훈 황혼에 지다’(1966)가 있다.
‘석양’ 제목의 영화도 노을이 배경이고, ‘황혼’ 제목의 노래도 ‘황혼이 진다’라는 가사로 인해 노을을 연상하게 한다. 석양과 황혼은 같은 뜻일까? 당나라 말기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은 “석양은 한없이 좋은데 단지 아쉬운 건 황혼이 가깝다는 사실![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이라고 읊었다. 이 시를 통해서 보자면 석양과 황혼은 분명히 다르다. 석양은 ‘夕陽’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저녁 석’, ‘볕 양’이라고 훈독한다. ‘陽’에 주안점을 둔 단어로서 아직 하늘에 태양이 떠 있는 상태의 늦은 오후를 뜻하는 말이다.
황혼은 ‘黃昏’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누를 황’, ‘어둘 혼’이라고 훈독하는데 주안점이 ‘昏’에 있다. 태양은 이미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데 지평선 너머의 남은 태양빛으로 서쪽 하늘이 노랗거나 붉은 상태인 채 다가오는 어둠이 바로 황혼이다.
하루 중 석양 무렵이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느라 가장 바쁘고, 가장 활기차게 움직이고, 또 하루 생활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은은 석양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 것이다. 다만 아쉬운 건 석양이 지나면 황혼, 즉 어둠이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계절로 보자면 가을이 곧 석양이고 겨울이 황혼이다. 80세 인생을 기준으로 보자면 60대가 석양이고 70대부터를 황혼이라고 해야 할까?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석양에 해당하는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노인일수록 더 보람찬 가을을 수확하려는 노력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