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공약은 잊고 정책기조 바꿔라

입력 2018-11-1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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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창 국장대우 정치경제부장

대선 공약(公約)은 대개 빌 공 자 ‘空約’으로 끝났다. 이명박 정권의 747공약(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대국 진입)은 허황된 꿈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474 비전(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도 그랬다. 무리한 공약으로 국민을 홀린 뒤 약속을 지키려 발버둥쳤지만 실패했다. 국민소득은 이제 겨우 3만 달러를 넘어섰다.

문재인 정부도 전 정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공약에 매달리다 성장률 추락과 고용쇼크 등 위기를 자초했다. 역풍을 부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모두 문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이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밀어붙인 공약은 경기 하강에 가속도를 붙였다. 작금의 총체적인 난국은 공약 집착이 빚은 참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취약층의 일자리를 날리며 고용쇼크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을 약속했다. 매년 15.7%를 올려야 가능한 수치다. 지난해 최저임금 16.4% 인상을 밀어붙인 이유다. 올해도 “2019년 최저임금을 15% 올리면 9만6000명의 고용이 줄 것”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에도 두 자릿수 인상(10.9%)을 고집했다. 소비가 진작되리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대신 소상공인 등 전통적인 지지층이 등을 돌렸다.

공기업의 노조 임직원 고용세습 폐단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서두른 후유증이다. 비정규직 제로정책은 국정과제 1호였다. 공기업의 현실을 무시한 채 정책을 추진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났다. 신규 채용 감소와 고용세습 폐단 등을 낳을 거라는 우려가 현실화했다. 서울시 한 산하 기관선 비정규직 절반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절반은 짐을 싸게 됐다고 한다. 고용 안정을 도모한다는 정책의 역설이다. 올해 정규직 전환자 수가 정규직 채용 규모를 넘어서면서 취준생들 사이에서 “차라리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정규직으로 가는 게 낫다”는 자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자유경쟁이라는 시장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공약 폭탄은 또 있다. 당장 국민연금 개편이 기다리고 있다. 소득대체율 50%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다. 현재 45%로, 2028년까지 40%로 낮추도록 설계돼 있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보험료 두 자릿수 인상이 불가피한데도 문 대통령은 요율 인상에 제동을 걸었다. 여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조차도 소득대체율 인상을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고 비판한 터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은 더 이상 안 된다.

公約은 空約일 뿐이다. 선거 과정에서 표를 얻기 위해 무리한 공약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다. 선거 후는 달라야 한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리한 공약은 국민에게 진솔하게 설명하고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하강국면의 우리 경제는 유가와 환율, 금리 등 신3고에 직면해 있다.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마저 반도체 고점론 확산으로 비상등이 켜졌다. 2~3년 이내에 글로벌 경제위기인 ‘퍼펙트스톰’이 올 거라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2~3개월짜리 단기 일자리 수만 개를 급조하는 눈가림에 급급할 때가 아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니다. 순간의 고통을 넘기는 진통제로는 소비 증가와 투자 증가, 성장률 제고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없다.

청와대가 경제사령탑을 교체했다. 핵심정책을 주도해온 김수현 사회수석의 정책실장 임명은 종전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강한 의지 표현이다. 소득주도성장 등이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수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9일 경제민주화를 강조한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시장에 역행하는 정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잘못된 공약과 국정과제에 매달리는 한 정부가 그토록 원하는 일자리 확충과 경제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업이다. 이념 편향과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기업이 뛰게 하면 일자리는 늘기 마련이다. 규제 혁파와 기득권 노조 개혁을 통한 노동 개혁은 새 경제팀의 당면 과제다.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 없이 공정과 상생의 일자리 문화는 기대할 수 없다. 기득권 노조와 야합한다면 문 대통령이 강조한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는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이익집단 등에 밀려 결정을 미루고 있는 공유경제와 서비스 산업, 관광, 헬스케어 분야의 규제 혁파도 시급하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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