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인터뷰] "B급? F급? 며느리에게 왜 등급이 필요하죠?"

입력 2018-1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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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B급 며느리' 선호빈·김진영 부부 인터뷰

"명절 때 시댁에 안 내려갔어요. 그래서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 김진영(36) 씨는 참지 않는다. 시가에 갔다가 돌아올 때면 늘 달라져 있는 아이 옷부터 결혼 전부터 편하게 지냈던 시동생을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않아 받은 시어머니의 타박을 이해할 수 없다. '도련님'이라는 호칭은 사극에서 하인이 부잣집 아들에게 불렀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사사건건 시어머니와 부딪히자 진영 씨는 결국 시가에 가지 않기를 선언한다.

"걘 B급도 아니고 F급이야, F급!" 60대인 시어머니 조경숙 씨에게 진영 씨는 '되바라진 며느리'다. 며느리라면 자고로 집안 대소사에 참석해야 하는 것을, 명절에도 오지 않는다고 선언하다니. 그야말로 '빵점 며느리'다. 며느리가 전화를 받지 않고, 하나뿐인 손주 얼굴조차 보지 못하는 현실이 그저 분통 터질 뿐이다.

이 모든 상황을 필름에 담은 선호빈(37) 감독 역시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 아내는 내 부모님과 많은 갈등을 만들었다. 나는 나의 불행을 팔아먹기로 결심했다." 이 자조 섞인 내레이션은 'B급 며느리'의 서사를 예고한다. 선 감독은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이 정점을 찍던 때, 진영 씨의 요청으로 촬영을 시작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를 연출한 선호빈 감독(왼쪽)과 주인공인 아내 김진영씨가 지난 5일 인천 강화군에서 이투데이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를 연출한 선호빈 감독(왼쪽)과 주인공인 아내 김진영씨가 지난 5일 인천 강화군에서 이투데이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5일 인천 강화군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B급 며느리' 선호빈 감독과 주인공 김진영 씨를 만났다. 진영 씨는 영화 속 모습 그대로였다. 자기 생각을 말할 때 주저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눈 앞에 마주한 선 감독과 진영 씨의 '티키타카'를 보고 있으면 'B급 며느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만큼 'B급 며느리'는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다. 오히려 영상 속 모습들은 실제의 30%도 담아내지 못한 거라는 설명이 따라왔다.

"남편에게 '너희 엄마가 나한테 이랬다'고 말하면, '우리 엄마 그런 사람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어머니는 꼭 둘만 있는 상황에서 날카로운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러곤 신신당부하셨죠. 호빈이한텐 말하지 말라고. 그게 너무 부당한 거예요. 아들 앞에서는 차마 본인도 인정 못할 말들을 왜 나한테 하는 거지? 심지어 나는 아들보다 어려운 사람인데, 나는 남이고 낯선 사람인데? 생각했죠. 참을수록 강도가 세지더라고요. 억울해서 찍으라고 했어요."(진영)

'B급 며느리'는 눈앞에서 직접 고부갈등을 지켜보는 것처럼 적나라하다. 결혼 2년째인 2013년 여름,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이 격화되던 때 '고프로'부터 시작해 하나둘 영상으로 찍다보니 700시간 분량이 촬영됐다. 선 감독은 "정말 상황이 심각했을 때는 못 찍었다"고 설명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할 수가 없으니까요. 사실 못 찍은 장면이 훨씬 많죠. 저는 감독으로서 못 찍은 걸 해명해야 해요. 잽싸게 찍었어야 했는데."(웃음)

▲'B급 며느리' 한 장면. 선호빈 감독은 아내와 어머니의 골이 깊은 고부 갈등을 솔직하면서도 발칙하게 영상으로 기록했다.(영화 캡처)
▲'B급 며느리' 한 장면. 선호빈 감독은 아내와 어머니의 골이 깊은 고부 갈등을 솔직하면서도 발칙하게 영상으로 기록했다.(영화 캡처)

시어머니 경숙 씨는 개봉 1년여가 된 지금까지도 완성본을 보지 않은 상태다. "어머니는 전주 영화제 극장까지 오셨다가 영화가 시작하니까 나가셨어요. 못 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예고편이 나오고 뉴스나 소개 프로그램에 영화가 소개돼도 굉장히 날카로우셨어요. 영화 오프닝에 나오잖아요. 손자가 오지 않는다고 주변에 이민 갔다고 거짓말을 하실 정도로 남의 눈을 의식하는데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그때는 그러실 게 아니라고 밀어붙이긴 했는데, 지나고 생각하니 대단히 큰 희생을 강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B급 며느리' 속 며느리 진영 씨의 멘트는 거침이 없다. 특히 본인 입맛대로 손주의 옷을 갈아입히는 시어머니에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제가 싫으면 제 아들도 만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렇지만 시어머니는 "손자만 보면 된다"며 매주 아들 부부 집에 찾아왔다고. 결국, 2년 넘게 시부모 집에 발길을 끊었다.

"저는 서로 감정이 좋지 않으니 안 보는 게 낫겠다고 했는데, 남편은 그 말을 끝끝내 전하지 못했어요. 어머님은 식사 준비도 안 돼 있는데, 김치도 있고 받을 상황도 아닌데 으레 김치 밀어 넣으시는 거죠. 제가 고맙다는 인사를 안 했다고 짜증 내시고. 본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지점에 와서도 '네가 잊고, 없었던 일로 하라'고 강요하는 게 딱 며느리를 대하는 가족의 태도거든요. 너는 으레 그런 일을 앞으로도 겪을 거고, 일을 크게 만드는 게 너한테 의미가 없을 거라는 식의 태도를 남편도, 시부모도 강요했죠."

▲진영 씨는 사사건건 강요하는 시어머니의 행동이 못마땅할 때도 있지만, 좋은 시어머니인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진영 씨는 사사건건 강요하는 시어머니의 행동이 못마땅할 때도 있지만, 좋은 시어머니인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영화는 2016년 12월 진영 씨가 대전에 있는 시부모의 집을 찾아가서 현관문을 닫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장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공존한다. '결국 타협했다'는 안타까운 시선과 '그럴 줄 알았다'는 안도 섞인 반응이 대치된다. 하지만 진영 씨에게 이 발걸음은 '진일보(進一步)'였다.

"결혼한 많은 여자에겐 강요된 시가행 주기가 있어요. 그걸 거부했을 때 남편과 시부모님은 불편해하죠. 어머님은 어디 IC를 타고 어느 길을 거쳐서 오라는 식의 특유의 간섭까지 하셨죠. 계속 확인하세요. 그 길로 오는지요. 그때 얘기를 하면 '네가 몇 번이나 왔다고 하냐' 그러세요. 설령 1년에 한 번만 가더라도 제가 가고 싶을 때 만나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가는 게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 아닌가요. 제가 갔을 때는 '너 지금쯤 가야지'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날짜를 정해주는 사람도, 어떤 길을 타고 가야 할지 강요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제가 원할 때 원하는 길로 갔죠. 저한텐 되게 중요한 일이에요."

영화에서 고모들은 고부 갈등을 중재하며 선 감독에게 '여기선 이렇게 말하고, 저기선 저렇게 말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선 감독은 이러한 조언을 실천하지 않는다. 한숨을 내쉬거나 두 사람을 보며 지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진영 씨와 경숙 씨가 그런 방법이 통할 사람들도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고모들도 고부 갈등을 지탱하는 사람들이에요. 먼저 저희 어머니한테 '진영이 왜그래?'라고 하시죠. 가부장제가 원래 그렇게 운영되잖아요. 저는 그래서 그 부분을 비웃는 논조로 넣었어요. '당신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족에게 기껏 하는 조언이 그거냐'라는 의미로요. 그냥 '참아'라는 말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어요. 그 말들로 가부장제의 허술함과 허약함을 느꼈어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한 재원인 진영 씨와 구연동화 자원봉사를 다니는 인자한 할머니 경숙 씨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간상이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역할이 씌워지면서 생긴 기대심리가 갈등을 부추겼다.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에서 흔하다면 흔히 볼 수 있는 두 여성의 사연이다.

"어머니한테 고마운 것도 있어요. 어떤 어머님은 한 번 대든 며느리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도 하시잖아요. 어머님도 제가 얼마나 밉겠어요. 가족이니까 보시는 거죠. 그런 부분은 저도 고맙게 생각해요. 굉장히 착하신 분이에요. 성격은 진짜 안 맞아요. 다른 데서 만났으면 서로 좋아하지 않았을 사람들이에요."(웃음)

▲'B급 며느리' 진영 씨는 가부장제를 향해 하이킥을 날리며 대한민국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 선 감독은 50대 이상 관객을 만날 때면 "진영이가 특이한 게 아니다"라고 한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B급 며느리' 진영 씨는 가부장제를 향해 하이킥을 날리며 대한민국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 선 감독은 50대 이상 관객을 만날 때면 "진영이가 특이한 게 아니다"라고 한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선 감독은 50대 이상 관객과 대화를 나눌 때 'B급 며느리' 효과를 체감한다. '요즘 애들은 저래?'라는 반응을 들으면 즐겁다. 그대신 짧은 충고를 잊지 않는다. "진영이는 특이한 애가 아니에요. 놀라시는 어머님들께 저는 이렇게 말하죠. '당신 앞에서 어떤 말을 하건, 어떤 웃음을 짓든 모든 며느리의 생각은 똑같습니다. 머릿속은 진영이랑 다르지 않아요'라고요."

구세대 시어머니와 신세대 며느리의 아주 평범한 고부 갈등은 근원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선 감독은 'B급 며느리'를 '성장영화'라고 정의했다. 누가 이기고 지고를 떠나 상대방의 모순을 포용하는 지점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B급 며느리'라는 표현도 선 감독은 만족스럽지 않다. "F급!"이라고 외치던 경숙 씨가 영화 말미에 진영 씨를 'A-'라고 한 것에 선 감독은 실망했다. "A급은 뭔가요? 한국에선 며느리는 등급을 매길 수 있는 존재라고 보는 거예요. 인간 자체로 봐주지 않는 거죠."

올해 추석에 선 감독과 진영 씨는 대전에 내려가지 않았다. 시부모가 여행을 떠난 덕분이다. '명절엔 무조건 가족이 모여서 보내야 한다'고 외치던 경숙 씨의 달라진 행동이다. 선 감독은 "곗돈 타셔서 가는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의미 있는 포기"라고 했다. 진영 씨 역시 "놀라웠다"는 반응이다.

진영 씨와 시어머니 사이는 현재 비교적 평화롭다. 대신 선 감독과 시어머니의 갈등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진영 씨는 이 갈등에 대해 "원래 갈 곳으로 간 것"이라고 했다. "저는 이 영화를 계기로 어떻게 된 게 아니라 자기 자리를 찾은 거라고 봐요. 며느리를 대하는 시부모님 태도를 쭉 관찰하면서 느낀 것은 원래 아들과 부모가 가진 갈등이 결혼하면서 며느리한테 전가되더라고요. 원래 아들한테 갖고 있던 서운함이 며느리한테 투사되고, 아들한테 받고 싶었던 것을 며느리한테 요구해요. 보상심리가 돼서 몇 배로 돌아와요. 남편도 결혼하면 자연스레 거기서 빠지고 싶어 하죠. 하지만 효도도 갈등도 다 자기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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