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아라비아 산업에너지광물부 장관은 “원유 수요가 적다”며 “다음 달부터 하루에 5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알팔리 장관은 이날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OPEC 회원국과 비회원 주요 산유국 10곳의 장관급 공동점검회의(JMMC)에서 “더 많은 원유 감산에는 아직 산유국들이 합의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이란 원유 거래 금지 재실시를 앞두고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사우디에 증산을 요청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가 상승을 억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지난달 2월 자말 카슈끄지 언론인 살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원유 증산에 순순히 동의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달 초 이란 제재를 완전히 부활시키면서도 한국과 중국, 인도 등에 한시적으로 이란 원유 수입을 허용하면서 공급 부족 우려가 완화해 유가가 급락하자 태도를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 정치적 압박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사우디의 감산 추진에 한몫 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국제유가는 지난달 초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나서 20% 하락해 약세장에 진입했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지난 9일 전일 대비 0.8% 하락한 배럴당 60.19달러로 마감해 10거래일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는 1984년 이후 34년 만의 최장 기간 하락을 기록한 것이다.
원유시장 전문 애널리스트들은 하루 최소 100만 배럴 감산이 이뤄져야 시장에 균형을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는 유가가 떨어지면 지금 추진 중인 경제개혁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는다.
반면 비회원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는 감산을 추진하는 사우디를 비판하고 있다. 현 시장 상황은 단지 계절적 요인에 따른 것이며 내년에도 공급과잉이 지속될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FT는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들이 일일 30만 배럴 증산을 목표로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 사우디와 대립각을 세우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OPEC 회원국과 비회원 주요 산유국들은 오는 12월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175차 회의에서 원유 생산량과 관련한 새 정책을 결정할 예정이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2016년부터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원유 감산 정책을 같이 펴왔다. 산유국들이 일일 180만 배럴을 감산하면서 배럴당 30달러 이하로 떨어졌던 유가가 2년 만에 80달러 넘게 오르자 올해 6월에는 유가 상승을 완만히 하자는 데 합의하기도 했다.
현재 OPEC의 수장인 UAE의 수하일 알마즈루이 에너지부 장관은 “감산하거나 다른 어떤 결정이 있겠지만 원유 생산을 늘리는 방향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