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건국 1100년을 기념하는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의 ‘고려청자전’은 여러 모로 기록에 남을 전시였다. 규모나 내용면에서 지금까지 일본에서 열린 고려청자전에서 단연 최고라고 할 만했다. 출품작 모두가 일본 내 소장품으로 채워졌고 최초로 공개된 작품도 10점이 넘었다. 고려청자 가운데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3점인데, 이들도 30년 만에 자리를 같이했다. 한 시립미술관이 이 정도의 청자명품을 동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일본으로 유출된 우리 문화유산의 실상이 가늠되지 않아 막막했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이 전시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이 상당한 금액을 협찬했다고 했다. 그 내용이 명기된 도록이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고, 그것에 더해 관람객 가운데 약 10∼15%가 한국에서 온다는 귀띔에 ‘아, 우리도 이제 이 정도 여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은 한결 느긋해졌다.
일본 내 우리 문화유산의 소장 내역이 정확히 밝혀진 적은 없다. 도쿄국립박물관이 질과 양에서 압도적이고, 절이나 신사도 만만치 않다.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부지기수이겠지만, 유명 기업 컬렉션의 한국 미술품이 공개될 때마다 우리는 몸서리친다.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겼던 일제강점기, 다수의 일본 재벌들은 축적된 부로 중국과 한국의 문화유산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미쓰비시의 세카이도(靜嘉堂), 도부(東武)철도의 네쯔(根津)미술관, 긴테스(近鐵)의 야마토분가간(大華文華館)이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이번 청자전에도 이들 기관의 소장품이 다수 나왔다. 미술과 자본은 태생적으로 가치나 지향점이 다르지만, 그 자본의 도움으로 인류의 문화유산이 보존되는 역사가 이곳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대마도 불상 도난 사건(2012. 12)과 우리 법원의 (고려 때 서산 부석사에 모셔진 불상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 이후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여론 동향을 들으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아무튼 그것이 빌미가 되었는지 국립중앙박물관이 12월에 개막하는 ‘대고려전’에 전시할 유물을 빌려오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전언이다. 일본 문화재청의 암묵적인 행정지도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 저들이나 서로가 지고 있는 게임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답사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늘 비슷하다. 문화예술을 대하는 저들의 안목이 부럽고, 찬란했던 우리 문화유산 대부분이 저들이 저지른 병화(兵禍)와 약탈로 사라져 버린 것에 분노하고, 그럼에도 일본 곳곳의 신사와 사찰, 민간에서 우리 미술품을 신주단지 모시듯 보존해온 저들이 역설적으로 고마운 것이다. 또 눈앞의 유물이 이곳에 와 있는 내력을 고통스럽게 기억하고,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있을까 하는 비원(悲願)을 담아보는 내 마음속의 의식은 계속되어왔다.
야마토분가간 고려건국 특별전을 관람하며 그런 감정이 얼마간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실마리는 전시 안내를 해준 학예사가 내게 건넨 말 한마디였다. “미술은 인류적 현상이다. 그 본질은 세계성에 있다.” 야마토분가간의 초대 관장 야시로 유키오(矢代幸雄)가 추구했던 미학적 가치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나는 한국미의 특수성에 의식적으로 집착함으로써 그 아름다움의 본질과 보편적인 가치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전류처럼 뇌리를 타고 흘렀다. 천 년 전 고려는 특유의 열린 자세로 세계가 찬탄하는 그 지극한 아름다움을 저 전시 작품에 녹여내었는데….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보편적 미감으로 발전시켜 세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괴테의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말이 새롭게 다가왔고, 그때서야 나는 분가엔(文華苑)의 가을 분위기에 깊게 빠져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