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해고 기술은 연애의 이별 기술과도 상통한다. “사랑하면 어떻게든 잘되게 하려고 하고, 미워하면 어떻게든 안 되게 하려 한다.”[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공자의 이 말은 인지상정의 압축이다. 살다 보면 사랑도 이별도 다 겪게 된다. 바람둥이 고수와 하수는 유혹의 기술이 아니라 이별의 기술에서 판가름 난다. ‘사뿐히 진달래꽃 즈려 밟게’ 기도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뉴월 서리 내리지 않게 하는 지혜를 가졌다.
일본 출신 역사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로마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매력을 이별의 기술과 연관시킨다. “카이사르는 여자들한테 인기가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여자들한테 한 번도 원한을 산 적 없는, 보기 드문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 비결은 이별 때 모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카이사르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과 통하며, 그 대상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수가 많든 적든 한가지라는 지적이다.
몇 해 전 핀란드의 한 현직 정치인이 연인에게 ‘이제 끝이야(that’s it)’라는 달랑 한 문장의 문자로 이별을 통보했다가 ‘최고의 무례남’이란 국제적 구설에 올랐다. 상대 여성이 언론에 폭로하는 등 보복을 당했다. 알고 보면 뒤끝 작렬은 이별 그 자체보다 절차의 무례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리더십의 핵심인 용인술 역시 그렇다. 용인술은 사인술(捨人術)과 통한다. 사람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잘 버릴 줄 안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채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해고다. 이는 ‘조자룡 헌 칼’처럼 마구 휘두르며 “넌, 당장 해고야”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다. 뒤끝, 즉 원한과 모욕감, 배신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채용이 기술이라면 해고는 예술이다. 해고는 명분에 대한 설득과 당사자의 납득, 남은 자들의 터득, 삼박자가 어우러질 때 의미가 있다. 어떤 기준과 프로세스를 거쳐서 내치는가는 리더십의 결정적 지표다. 조직문화는 면접보다 해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해고에서 절대 피해야 할 것은 간접 전달과 우회화법이다.
첫째, 직접 대면하라. 불편하더라도 악역을 대행시키거나 피하지 말라. 자신의 인사에 관한 소식을 회사 홈페이지나 문자, 혹은 제3자를 통해 알게 하는 것은 최악이다. 좋은 소식은 먼저 알리고 싶지만 불편한 소식은 직접 알리기 어렵다. 그럴수록 최대한 당사자를 직접 대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는 ‘스트롱 맨’으로 통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그는 “외부에서 보기엔 그냥 사람을 빗자루로 쓸어내듯 해고하면 될 것 같지만 일이 항상 그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자르려는 사람을 사무실로 불러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마음이 바쁘더라도 바늘허리 매어 못 쓴다는 말은 바로 해고 통보의 예의와도 통한다. 무례 부작용으로 덧나면 오히려 수습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문자 해고, 일방 통고는 법리적 문제를 떠나 최악의 방식이다.
둘째, 우회적으로 돌리지 말고 직설화법으로 설명하라. 여기저기서 들은 말을 전하며 주위의 평판에 기대 이야기하는 것은 비겁하다. 당사자를 위로하기는커녕 비참하게 만든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공동위원회의 결론, 여론을 핑계 대기보다 투명한 기준에 의거해 말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다. 이는 떠나는 사람뿐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조직의 구성원은 위급할 때 자신을 지지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리더를 깊이 신뢰한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전원책 변호사 문자 해촉 통보,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 감독 사임 논란은 이 같은 기본적 용인술의 상식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아쉽다. 자녀는 부모의 등을 보며 인생을 배우고, 구성원은 리더의 사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충성을 결심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