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이른 시기의 한자로서 중국 최초의 문자로 여기는 갑골문(甲骨文)이 발견된 중국의 하남선 안양현 옛 은(殷)나라 유허지에는 2009년에 중국 정부가 세운 중국문자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1층 전시실에는 중국 한자가 변천해온 과정을 중심으로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중국에 속한 ‘소수민족’들의 문자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2층 전시실에는 훈민정음도 전시되어 있고 ‘우리나라(我國=中國)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문자’라는 내용의 설명이 붙어 있다. 소름 끼치는 일이다.
서울 인사동에 가면 문방사우, 즉 붓, 먹, 종이, 벼루 등을 파는 가게들이 있는데, 이들 가게에서는 서예연습용 체본으로 중국에서 수입해온 광개토태왕비 탁본집도 팔고 있다. 그런데 이 광개토태왕비 탁본집의 표지에는 ‘진호태왕비(晉好太王碑)’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好太王은 광개토태왕의 다른 약칭이다.
광개토태왕의 정식 시호(諡號:사후에 생전의 공덕을 기려 추증한 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나라의 언덕에 묻히신 국토의 경계를 널리 넓히시고 나라를 평안하게 하신 좋고 위대한 왕)’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국토를 넓힌 공적에 주안점을 두어 ‘광개토태왕’이라고 약칭하지만 중국에서는 ‘광개토(廣開土)’ 즉 ‘국토의 경계를 넓혔다’는 의미를 담은 약칭을 사용하면 광개토태왕이 중국 땅을 많이 정복했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므로 절대 광개토태왕이라고 칭하지 않고 ‘好太王’이라고 칭한다.
그런 好太王, 즉 광개토태왕 비의 탁본집 책이름을 ‘晉好太王碑’라고 명기함으로써 공공연하게 호태왕, 즉 광개토태왕을 고구려 왕이 아닌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晉’나라 왕으로 공표(公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책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하나를 지키지 못하면 장차 열 개, 백 개를 빼앗긴다. 임백호 선생 물곡비의 의미를 다시 새겨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