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은 왜 ‘코스트 킬러’에서 ‘사치왕’ 이미지로 전락했나

입력 2018-11-22 02:48 수정 2018-11-22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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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망하기 일보 직전이던 닛산자동차에 구원투수로 등판해 일본 기업사에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긴 이방인 최고경영자(CEO) 카를로스 곤이 하루 아침에 ‘용의자’ 신분으로 전락했다. 뼈를 깎는 비용 절감으로 회사를 살려낸 그가 자신에 대해선 유독 후하게 셀프 보상을 하고 이를 정직하게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이방인으로서 종신고용·연공서열·멸사봉공으로 대표되는 일본 기업 문화를 갈아엎고 보수적인 일본 기업에서 장수할 수 있었던 건 닛산 구원투수로서 ‘곤 프리미엄’이 붙어있던 덕분이다. 그러나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자동차 산업 진출로 업계 생태계가 바뀌고, 일본 기업 문화에도 새 바람이 불면서 더 이상 곤 식의 카리스마는 통하지 않게 됐다. 결정적인 화근은 곤이 무리하게 닛산과 르노의 합병을 추진한 것이다. 이를 반대하는 일본인 경영진과 마찰이 빚어지고, 결국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가장 거슬렸던 그의 보수 문제가 터졌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연합 회장이 10월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자동차쇼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파리/로이터연합뉴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연합 회장이 10월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자동차쇼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파리/로이터연합뉴스

◇이민자 출신 야심가=곤 회장은 레바논 이민자로서 브라질에서 태어나 어릴 때 베이루트로 다시 옮겼다. 이후 그는 프랑스 파리 명문대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타이어 업체 미셰린에 들어가 18년간 근무했다. 제조 공정에 근무하다가 관리자로 승진한 그는 미셰린 브라질 법인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자리를 옮겨 좋지 않은 경기 상황에서도 사업을 확장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덕분에 1990년 미셰린 북미 사업부 CEO에 취임하며 성공적인 기업가 이미지를 굳혔다. 그러나 미셰린은 철저한 가족회사였기 때문에 곤은 자신이 총괄 CEO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프랑스 자동차 제조업체인 르노의 수석 부사장으로 옮겼다. 당시는 르노가 볼보와의 합병 실패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이에 곤은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공격적인 비용 절감에 사람들은 ‘코스트 킬러(Le Cost Killer)’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러다가 르노가 1999년 위기에 처한 닛산 지분을 대규모 인수하면서 곤은 닛산에 COO로 파견됐다. 그는 고용인력의 14%에 해당하는 2만1000명을 구조 조정하는 자구안을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자신의 계획이 실패하면 물러날 것이라고 약속했다. 놀랍게도 1년 만에 닛산은 재정이 안정화하며 브이자(V) 회복세를 나타냈다. 2001년 회사는 그를 CEO로 임명했다. 이듬해 그는 중국 둥펑자동차와 합작해 현지에 생산 라인을 만들었고, GT-R 같은 스포츠카 모델도 부활시켰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파고를 만나면서 그는 다시한번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배터리 구도 자동차 개발에는 꾸준히 투자했다. 콤팩트 전기차 ’리프‘는 그 결실이다. 그러다가 올들어 부정 사실이 잇따라 발각되면서 곤의 명성에도 금이 갔다.

◇보수에 대한 이중성=곤이 1999년 닛산 COO로 파견돼 경영 합리화 차원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고령 근로자에 대한 대우였다. 그는 일본 기업 전통인 연공서열 제도를 없애고 성과제를 도입, 성과가 우수한 직원들에게 보너스가 돌아가게 했다. 닛산이 이를 받아들인 건 그만큼 그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러나 곤이 자신이 만든 성과제에 발목이 잡혔다고 지적했다. 곤은 2011~2015년 자신의 보수를 실제보다 약 50억 엔(약 500억 원) 축소해서 닛산의 유가증권 보고서에 기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그는 9억8000여 만 엔에서 많게는 10억3500만 엔의 연봉을 받았다고 신고했는데, 실제로는 20억 엔 가량을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서구 기업 CEO들에 비하면 결코 많은 게 아니지만 일본 기업 문화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수준이다. 곤은 지난해 보수를 7억3500만 달러로 신고했는데, 이는 일본 최대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의 도요다 아키오 CEO보다 4배 이상 많은 액수다. 그가 보수를 낮춰 신고한 건 일본 기업 문화를 의식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고해서 그는 자신에 대한 보상이 결코 과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올해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보수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어떤 CEO도 자신이 후하게 보상받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돌려 말했다. 그는 닛산과 르노로부터 보수를 받았고, 미쓰비시 인수 후에는 미쓰비시에서도 회장 보수를 챙겼다.

◇드러나는 사생활=곤의 체포 이후 일본 언론들은 그가 회삿돈을 사적으로 유용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가 금융상품거래법을 위반한 만큼 돈 사용처에 더 민감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프랑스 파리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레바논 베이루트,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등 4곳에 호화 저택을 두고 회사 전용기로 전 세계를 오간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 저택들은 닛산 측이 무상으로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회삿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닛산은 곤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요트 비용뿐 아니라 가족과의 외식 비용, 가족 여행 비용 등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곤은 또 고가의 미술품을 수집하고, 와인 양조장에 투자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프랑스 파리 교외의 베르사유 궁전을 빌려 두 번째 부인의 생일 파티를 성대하게 벌이기도 했다. 이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마리 앙뚜와네뜨’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파티장에는 18세기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연기자들까지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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