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기획_도전하는 여성] 심은진 "또 다른 수식어도 기대해주세요"

입력 2018-12-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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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복스 출신 배우에서 '메간헤스(Megan Hess) 아이코닉 전' 공간 디자이너로

▲심은진 씨는 지난달 28일 성동구 서울숲 갤러리아포리 더서울라이티움에서 진행되고 있는 '메간헤스 아이코닉 전'에서 이투데이와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오승현 기자 story@
▲심은진 씨는 지난달 28일 성동구 서울숲 갤러리아포리 더서울라이티움에서 진행되고 있는 '메간헤스 아이코닉 전'에서 이투데이와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오승현 기자 story@
"공간디자이너는 어릴때부터 장래희망이었어요. '내가 지은 집에서 살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해왔어요. 물론 지금 당장 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내공을 쌓은 후 반드시 하고 싶은 꿈이에요. 이제 시작인 셈이죠. 천천히, 하나씩 그 꿈을 이뤄내는 중이에요."

1세대 걸그룹 베이비복스 출신 가수이자 배우인 심은진(37) 씨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은 또 다른 수식어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어느새 심 씨에게 '공간 디자이너'는 또 다른 정체성이 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은 디자인계 '핏덩이'일 뿐이라며, 좀 더 멀리 성장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지난달 28일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더서울라이티움 G층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메간헤스 아이코닉 전'에서 심 씨를 만났다. 메간헤스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삽화와 여러 패션일러스트레이션으로 유명한 일러스트 작가다. 샤넬, 크리스찬 디올, 루이비통, 펜디, 지방시 등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했으며, 미국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선택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 메간 헤스의 작품에서 영감 받아…협업으로 가능했던 공간 디자인

'메간헤스 아이코닉 전' 공간 디자이너라는 무겁고 큰 역할을 떠안으며 얻은 부담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전시회에 붙는 '국내 최초' 나아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전부가 아니었다. 500평을 어떻게 담아내야 관람객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을지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심 씨는 "저도 진짜 전시회를 많이 다녔지만, 가끔 돈 내고 보기 아깝다는 전시회가 있었다"며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500평 규모, 총 9개 존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회에는 심 씨의 5개월간의 노력의 결실이 담겼다.

▲심 씨는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인 메간 헤스의 국내 전시의 공간 디자이너로 활약하며 경험한 고충을 고백했다. 오승현 기자 story!
▲심 씨는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인 메간 헤스의 국내 전시의 공간 디자이너로 활약하며 경험한 고충을 고백했다. 오승현 기자 story!

"메간헤스는 세계적으로 정말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예요. 하지만 희한하게 우리나라에선 인지도가 없어요. 총감독을 맡으신 최요한 감독님하고 같은 생각이었어요. '메간헤스가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없다면 우리가 인지도를 만들자'였죠. 샤갈이나 고흐처럼 이름만으로 올 수 있는 전시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사람들이 전시회에 많이 오게 하려면 공간을 재밌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공간에 대한 계획을 감독님하고 정말 많이 의논했죠."

설계도를 그려나가며 메간 헤스의 책과 그림을 살펴보면서 갖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때마다 '기둥 처리'라는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30여 개의 기둥이 500평 사이사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돌아보시면 아실 거예요. 원형, 네모, 직사각형….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기둥이 가로막고 있더라고요. 정말 큰 숙제였어요. 어떻게 하면 기둥을 잘 활용하면서 공간을 좁지 않고 재밌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수없이 고민했죠. 평면도만 한 달 반 동안 그린 것 같아요. 수정에 수정을 반복했으니까요."

'라운지 존', '메간헤스 존', '섹스 앤드 더 시티 존', '럭셔리 브랜드 존', '더 드레스 존', '뉴욕 존', '파리 존', '패션하우스 존', '클라리스 존' 등 9개 존으로 꾸며진 공간에 기둥은 어떻게 활용됐을까. "파리 존에 세워진 개선문 보셨나요? 그것도 기둥이었어요. 정말 난감했던 기둥 중 하나였죠. 메간헤스의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지금은 오히려 기둥들에 고마워요. 오히려 미로같은 공간을 만들어준 것 같아서 재밌어진 것 같은데요?"

▲심 씨는 500평 규모의 전시관 곳곳에 세워진 각기 다른 모양의 기둥을 적극 활용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 했다. 사진 속 개선문도 기둥을 활용해 세운 벽체다. 오승현 기자 story@
▲심 씨는 500평 규모의 전시관 곳곳에 세워진 각기 다른 모양의 기둥을 적극 활용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 했다. 사진 속 개선문도 기둥을 활용해 세운 벽체다. 오승현 기자 story@

◇ 공간 디자인 외에도 주어진 소임…"메간 헤스가 울었대요"

메간헤스의 작품 300점. '메간헤스 존'에서는 메간헤스의 작업실을 재현했고, '더 드레스존'에서는 시대의 아이콘들인 배우, 가수, 유명인들과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 의상을 작가의 방식으로 그려넣었다. 최 감독의 아이디어로 20m 런웨이 등 실제 패션쇼장까지 재현했다. 거기에 검은색 천으로 가림막을 넣어 '백스테이지'를 표현한 건 심 씨의 아이디어. 시공사 ‘21그램’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다고.

"공간디자인을 처음 맡게 됐을 때 겁도 났어요. 한편으로는 정말 자신 있었어요. 메간 헤스의 그림체를 볼수록 머릿속에 더 큰 그림이 그려졌어요. 처음에 아무것도 없이 나무로만 벽체가 섰을 때 정말 기분이 묘했어요. 제 설계도대로 이 벽체가 세워졌다니요. 감독님과 시공사 분들과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는 아직 '핏덩이'인데, 잘 믿어주신 덕분이죠."

9개의 존 가운데 '섹스 앤드 더 시티' 존은 그에게 좀 더 특별하다. 메간 헤스에게 전성기를 가져다 준 작품이기도 하지만, 여주인공 '캐리 방'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심 씨의 '아트웍(artwork)'으로 채워졌다. '섹스 앤 더 시티' 애청자인 심 씨는 저널리스트인 '캐리'를 흰 종이에 검은색 글씨를 넣거나 전화기, 구두, 거꾸로 매달린 구두 등으로 표현했다.

"제일 아끼는 공간이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공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섹스 앤드 더 시티'존은 나흘 동안 제가 거의 살다시피 한 곳이에요.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저작권 문제도 있고, 당시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았을 때 삽화가 나왔던 거라 자료도 많이 남지 않았거든요. 그 큰 공간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을 때, 감독님께서 제 아트웍으로 채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셨어요. 막바지 공사 중일 때였는데, 갑자기 떨어진 특명이었죠."

▲대미를 장식한 '로즈 드레스 존'을 본 메간 헤스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심 씨는 전했다. 오승현 story@
▲대미를 장식한 '로즈 드레스 존'을 본 메간 헤스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심 씨는 전했다. 오승현 story@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한 ‘로즈 드레스 존’은 메간 헤스에게 헌정의 뜻으로 만들어졌다. 2m 2cm 크기의 '로즈 드레스'를 세우기 위해 영국 맥퀸즈 플라워 수석 디자이너 자비 자베라가 직접 내한해 1000개 이상의 꽃과 함께 200시간이 넘는 시간을 이곳에 투자했다.

"저는 자리에 없어 직접 보지 못했지만, 메간 헤스가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VIP 파티 전날 아침 일곱시 반까지 공사하고 나갔거든요. 그 때까지 메간헤스를 만나지 못했죠. 저를 계속 찾으셨대요. 만나고 싶다고요. VIP 파티 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굉장히 많이 감동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칭찬해주시더라고요.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 못다 펼친 디자이너 꿈, 차근차근 이뤄내기

메간헤스 전시회에 대한 심 씨의 열정적인 설명은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심 씨에게 이번 전시회는 '진짜'였다. 고등학교 때 상업디자인과를 전공한 심 씨는 베이비복스 활동 때문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공부를 다 끝내지 못했다는 '한(恨)' 때문일까. 2년여 걸친 노력 끝에 지난해 실내건축산업기사 자격증을 따냈다.

"자격증은 제 전시를 하고 싶어서 땄어요. 사실 연예인에게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제가 작심삼일 할까 봐 제대로 배워보자 하는 마음으로 목표를 높게 잡고 공부한 거죠. 일부러 기사도 냈어요.(웃음) 제가 포기할까봐요. 여러 사람에게 알리면 창피해서라도 따잖아요. 시험 준비도 어렵고 중간에 방송도 겹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딴 거죠."

공식적으로 이번 전시회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친한 언니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양평의 오리백숙집을 손수 리모델링하거나 친구들의 집도 다듬어주는 등 작업을 생활화 했다. 심 씨는 "재료비만 받고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며 작업을 했다"며 "그 덕분에 재룟값도 알게 되고 실전 경험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평소 자신이 생각한 감정들을 때로는 사진으로, 때로는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10년간의 기록물은 지난해 출간한 포토에세이 아트북 '헬로 스트레인저(Hello, Stranger)'에 다 담겼다. '작가'라는 타이틀도 얻은 셈이다.

"주변에서는 늘 대단하다고 해요. 어떻게 다했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시간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다음에는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요. 예전에 쓰다가 멈춘 게 있어요. 글 쓸 시간도 충분하지 않아서 속상해요. 몸이 바쁘고 피곤한 건 괜찮은데 생각할 게 너무 많다보니 정신이 너무 바쁜 거 있죠."

▲심 씨는 2년여 간의 노력 끝에 실내건축산업기사 자격증을 따내기도 했다. 심 씨에게 도전은 '에너지'다. 오승현 기자 story@
▲심 씨는 2년여 간의 노력 끝에 실내건축산업기사 자격증을 따내기도 했다. 심 씨에게 도전은 '에너지'다. 오승현 기자 story@

◇ '욕심 많은 그녀' 심은진 "행복하게 살 거예요"

'작가', '배우', '디자이너', '베이비복스 출신' 등 이어지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궁금했다. "베이비복스 덕분에 제가 얻은 게 얼마나 많은데요. 물론 힘든 것도 많았어요. 하지만 덕분에 정말 많은 사랑도 받았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심은진 앞에 붙은 베이비복스를 저는 굳이 떼려고 하지 않아요. 왜 떼려고 노력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심 씨로 태어났는데 심 씨를 바꾸기 어려운 것처럼 베이비복스는 연예인으로서 제 태생이잖아요."

그는 자신의 인생을 한 편의 영화라고 표현했다. 자신은 심은진이라는 배역을 살고 있고, 그 안에 있는 한 더 많은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공간 디자이너'든 '배우'든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설명도 붙었다.

"심은진의 인생에는 배우도 있고, 공간 디자이너도 있고, 작가도 있어요. 앞으로 뭐가 더 생길지 저도 모르겠어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제가 재밌으면 다 할 거예요. 제 인생이잖아요. 제 이름을 걸고 시작한 이상 끝까지 싸워서라도 다 해낼 거예요. 아니다 싶으면 빠른 포기도 할 거예요.(웃음) 저는 그렇게 심은진을 살아갈 거예요."

끝으로 '욕심쟁이' 심은진에게 도전이란 무엇인가. "저에게 도전은 에너지예요. 제가 살아가는 에너지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 계속해서 도전할 생각이에요. 아, 미리 소문 내야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대요. 다음 도전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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