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연 “근로이사제 도입, 노사갈등 심화 등 부작용만 우려”

입력 2018-12-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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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 협력 수준이 전세계적으로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에 근로이사제가 도입될 경우, 내부 감독기능 강화 등 긍정적인 영향 보다는 경영효율성 저하, 노사갈등 심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근로이사제 도입 현황과 문제점’ 보고서에서 "근로이사제는 노사협력 관계가 대체로 좋은 유럽 일부 국가에서만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고, 일본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도입 방침을 철회했으며, 독일에서도 근로이사제의 효과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노동조합연구소는 유럽경제지역에 속한 31개 국가 중 독일,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 14개 국가는 공기업과 일반기업에 근로이사제를 의무화하고 있고 스페인, 그리스, 아일랜드 등 5개 국가는 주로 공기업에 의무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나머지 12개 국가는 적용하지 않거나 매우 제한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반면 주주자본주의가 정착된 미국의 경우 주주 지상주의가 기업의 기초 개념이고, 미국 증권법에는 근로이사제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일본은 2014년 회사법 개정 작업을 추진하면서 정부가 노사공동결정제도 도입을 검토했지만 노동법학자들과 경제계의 반대로 도입 방침을 철회했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상장회사에 대해 종업원에 의해 선출된 이사(종업원 선출 감사역)를 선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방안에 대해 일본 노동법학자들은 산별노조 체계인 유럽에서 시행하고 있는 근로이사제를 기업별 노조체계인 일본에 도입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반대했다. 일본 경제계도 근로이사제가 일본 경제 현실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한경연은 “근로이사제가 우리나라와 경제시스템이 다른 일부 유럽국가에 시행되고 있고, 우리나라와 같은 기업별 노조체제인 일본이 근로이사제 도입 방침을 철회한 사례를 감안해서 근로이사제 도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근로이사제가 시행되고 있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주식시장 보다는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그 결과 기업이 금융기관, 근로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의 경우 작년 기준 GDP 규모는 3조 6774억 달러로 세계 4위 수준이지만, 주식시장 시가총액 규모는 2조 2,622억 달러로 세계 12위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형태도 주식회사 보다는 유한회사를 선호해서 전체 기업의 90% 이상이 유한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주식회사는 1%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GDP 규모가 1조 5308억 달러로 독일의 절반 수준이지만, 주식시장 시가총액 규모는 1조 7718억으로 세계 13위 수준이다. 회사형태도 90% 이상이 주식회사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경연은 “금융시스템, 자본조달 형태, 회사형태 등이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작동하는 유럽의 근로이사제를 우리나라에 도입할 경우 사업구조조정, 해외사업 진출 등 전략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의 이익이 지금 현재 보다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근로이사제가 정착된 독일 내부에서도 근로이사제로 인한 경쟁력 약화와 비효율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근로이사의 주장으로 인해 인수합병, 신규산업 진출, 구조조정 등 이사회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지연돼 경영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독일 기업들은 유럽주식회사(SE)로 전환하면서 근로자 경영참여를 회피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Allianz, BASF, Surteco AG, GFK 등의 독일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지배구조 선택이 자유로운 유럽 주식회사로 전환했는데, Surteco AG, GFK 등은 전환 과정에서 근로자의 경영참여를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유나이티드 항공은 근로이사제와 유사하게 종업원 대표 3명을 이사회에 참석시켰는데, 이사회가 수익 창출 보다는 임금인상 등에 중점을 두는 의사결정을 하고 경영위기 상황에서도 구조조정이나 인력감축을 회피해 결국은 파산했다.

한경연은 “이사회 내에서의 근로이사와 일반이사의 의견 대립으로 인해 인수합병, 임금결정, 해외사업 진출 등 전략적 의사결정이 지연되면 해당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추광호 한경연 일자리전략실장은 “근로이사제는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며 “특히 노사관계가 대립적인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하면 노사 및 사회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근로이사제를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사협의회 등 기존의 제도를 활성화해서 노사간 현안을 토의하면서 신뢰를 쌓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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