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원자력 발전이 유일한 대안인가?

입력 2008-06-10 08:47 수정 2008-08-0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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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4월29일 경남 양산군 장안면에 지어진 58만7000kW급 원자력발전소 고리1호기(사진)가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번째 원전 보유국이 됐다.

국내 첫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1호기는 박정희 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과를 거두면서 전기 소비가 늘자 총 1560억7300만원을 투입해 건설한 대규모 사업이었다. 당시 정부는 한국전력을 통해 미국의 웨스팅하우슷를 계약대상자로 결정했고 석유파동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계획보다 2년 지난 1978년 준공됐다.

이후 30년이 흐른 현재 원전은 20기로 늘고 설비 용량도 1만7716MW로 신장됐다. 설비 규모 면에서 세계 6위의 수준이다.

또한 고리와 울진, 월성에 6기의 원전을 신규로 건설하고 있고, 2기의 원전을 준비 중이다. 그간 국내 원자력발전은 총 2조kWh의 전력을 생산해 석유 대비 155조280억원, 가스 대비 247조2000억원의 원가 절감을 이뤄냈다.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에 육박하면서 '3차 오일쇼크'를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원전 증설의 필요성에 제기되고 있다. 원자력발전이 상업운전을 개시한지 30년만에 '제2의 전환기'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원자력이 고유가 시대의 대안으로서만 아니라 이산화타소 배출량이 다른 에너지에 비해 극히 적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발 또한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선 과거 정부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부지를 선정할 때 사회적 합의 과정을 소홀히 한 결과 21년이 걸렸던 점을 감안한다면 향후 신규 원전부지 선정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사용후 핵연료 처리 등의 과제는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에너지 비전을 세우면서 '원전 건설'이라는 너무나 손쉬운 선택만을 한다는 비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원전, 고유가 대안으로 급부상

원전은 지난 1973년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대안으로 추진돼 지난 30년간 국가 에너지 자립에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국내 첫 원전인 고리1호기가 가동된 1978년 발전량 가운데 석유 비중은 74%에 달했으나 원전 6기가 들어선 1986년에는 19%로, 20기가 들어선 2005년에는 4.9%까지 의존도를 낮췄다.

이에 따라 최근 '초고유가' 시대의 대안으로 원전이 급부상하고 있다.

오는 26일 예정된 국가에너지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열린 공청회와 공개 토론에서 전문가들이 원전 확대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도 이러한 '초고유가' 시대로 인한 위기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가간 에너지 확보경쟁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자원 보유국은 국영회사 중심으로 자원 국유화를 추진하는 '자원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있으며 생산광구 매입단가가 3년만에 4배로 뛰는 등 해외자원개발 여건도 악화되고 있어 에너지안보 측면에서 원자력은 효과적 방안이라는 것.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원전은 생산가격이 저렴한데다 가격 변동시에도 영향이 적고 물량비축도 쉽다"며 "기후변화 대응 측면에서도 원자력은 온실가스 배출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원료가격이 100% 상승할 경우 원전은 연료비가 1.4원 상승하는데 그치지만 유연탄은 21원, 액화천연가스(LNG)는 59원이나 상승한다.

발전 중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것도 원전이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이유다. 특히 발전부문은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6%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2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의무 설정방식이 국가별에서 부문별로 바뀔 가능성이 커 발전부문이 주요 감축의무 설정대상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1kWh를 발전하는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석탄 991g, 석유 803g, 천연가스 549g, 태양광 57g 등인 반면 원전은 10g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최근 열린 '에너지기본계획' 수렴을 위한 제2차 공청회에서 원전의 적정비중 목표로 원전 설비비중을 지난해 기준 26.0%에서 2020년에는 29.0%로 늘리고 2030년까지 37~42%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향후 원전 9~12기를 신설하는 방안이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전력부문에서 경제수준에 맞지 않게 과도하게 상승한 전력수요를 조정하는 것이 원전 확대보다 선행돼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원전 확대에 앞서 에너지절약 구조로의 전환과 신재생에너지 육성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유진 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팀장은 "전력수요 증가를 부추기고, 전기를 난방에 사용하는 등 에너지의 비효율적 사용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전 확대하는 선진국

원자력에 부정적이었던 유럽에서도 핀란드가 2005년 서구 유럽에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신규 원전 공사에 들어가는 등 주요 선진국들이 고유가 상황에서 원자력에 눈을 돌리고 있다.

프랑스는 2005년 7월 에너지정책지침법을 제정해 원전을 유지했으며 160만kW급 신형 원전을 2012년 완공할 예정이다. 기후변화 대응 선진국인 영국도 이산화탄소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시 신규 원전 건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일본은 오는 2030년 이산화탄소 13% 감축과 석유의존도를 현재의 50%에서 40%로 낮추기 위해 원전 비중확대에 나서고 있다. 2020년까지 신규원전을 11기 더 건설하고, 현재 60%대에 불과한 원전 이용률을 한국과 미국 수준인 90%까지 끌어 올린다는 구상이다.

중국도 원전 도입을 가속화해 2020년까지 31기를 도입, 설비용량을 40GW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석유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신규원전건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국(EIA)의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12GW(10기) 이상의 신규 원전건설을 추진 중이다.

◆가야할 길 멀다…부지, 방폐장 등 숙제 산적

그러나 원전의 이용 확대를 위해서는 과제도 적지 않다.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원전 9기 이상 건설을 적정한 방안으로 결정한다면 우선 신규원전 부지 선정이 현안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원자력발전 사업자인 한수원이 확보하고 있는 부지는 신고리에 4기, 신울진에 2기로 현재 부지에 추가할 수 있는 원전은 6기가 한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방안대로 원전이 확대된다면 최소 3~5기의 신규원전 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원전 부지도 방폐장과 마찬가지로 보조금 지원 등을 내세워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자발적인 신청을 받아 선정할 방침이지만 위험시설 유치에 따른 지역간 또는 지역내 갈등은 불가피하다.

건설재원 확보도 시급한 과제다. 1기의 신규원전을 건설할 때 약 2조5000억원이 필요한 만큼 13기의 신규 원전 건설에는 송·배전망 건설비용을 포함해 총 25조5000억~35조5000억원 가량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원전부지와 건설재원보다 더 큰 문제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 정책결정도 시급하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국가에너지위원회 산하 갈등관리전문위에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으며 오는 7월부터 공론화를 추진키로 했지만 상당히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이 2016년이면 포화상태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07년말 기준 고리, 영광, 울진, 월성 등 4개 원전본부에서 총 9400여톤의 사용후 연료가 발생돼 저장 중이며, 이는 4개 원전 저장용량의 약 75%에 달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사용후 연료의 중간 저장시설 건설을 추진할 경우 부지선정 단계부터 설계, 인허가, 건설 및 운용까지는 최소한 8년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한편 원자력의 안전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달 15일에는 영광 5호기에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고, 지난 7일 새벽에는 고리원전 3호기가 정비를 마치고 발전을 시작한 지 일주일만에 증가기 새는 사고로 운행이 중단됐다.

이유진 팀장은 "원전에서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도 우리는 원자력산업과 발전을 감시하고 통제할 독립적인 기구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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