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대화방] '손가락장갑 vs 벙어리장갑' 겨울철 진리는?…엄근진 토론배틀

입력 2018-12-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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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하나, 둘, 셋' 사진 찍는 소리에 브이(V) 포즈는 자동이다. 기자의 친구들 역시 7명 중 6명은 브이를, 1명은 하트 포즈를 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하나, 둘, 셋' 사진 찍는 소리에 브이(V) 포즈는 자동이다. 기자의 친구들 역시 7명 중 6명은 브이를, 1명은 하트 포즈를 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겨울철 길거리의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벙어리 장갑'을 끼는 사람과 '손가락 장갑'을 끼는 사람.

이 두 가지 장갑 중 겨울철 승리 아이템은 무엇일까? 동기 기자 두 명이 웃음기 뺀 엄근진(엄격·근엄·진지) 토론을 해봤다. (토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논리의 논리화, 성급한 일반화, 무지에 따른 주장, 감정에 의존한 편향성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미리 양해 부탁드린다)

◇사진 찍을 때 '브이(V)' 포즈 가능해?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나경연 기자: 단도직입적으로 진리는 손가락 장갑이죠. 사진 찍을 때 다들 어떻게 찍죠?

곽진산 기자: 전 사진 안 찍어요.

나: 아니 당신 말고요. 일반 사람들이요. 이 사진 한 장이면 다 끝나요. 이게 저번 주에 생일파티 하면서 친구들이랑 찍은 사진이거든요. 진짜 연출 아니고, '하나, 둘, 셋' 하니까 동시에 다 브이(V) 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브이 없으면 사진 찍을 때 큰일나요. 벙어리장갑은 브이가 안 돼요.

곽: 손가락으로 브이 하는 건 인정하는데. 너무 진부한거 알죠? 벙어리 장갑으로는 브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아집이고, 구태이고, 편견입니다. 박정희 시대 발언이죠. 자 보세요. 벙어리 장갑은 그 자체로 브이에요.

(출처=평창올림픽 공식 판매 사이트 캡쳐)
(출처=평창올림픽 공식 판매 사이트 캡쳐)

나: 물론 우기면 브이가 될 수 있어 보이긴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사진 찍는 사람 없잖아요. 그리고 손가락 장갑으로는 하트 모양도 할 수 있어요. 이게 평창 올림픽 공식 장갑 사진인데, 만약 벙어리 장갑이었다? 외국인들이 이 장갑으로 하트 절대 못 만들었겠죠.

곽: 일단 인정합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죠. 지금부터 심층적인 고찰로 들어갑니다.

◇가죽 장갑의 폭력성 vs 벙어리 장갑의 이중성

(출처=드라마 야인시대 캡쳐)
(출처=드라마 야인시대 캡쳐)

곽: 저는 장갑의 폭력적 성향을 지적하고 싶네요. 김두한이 누구에요? 깡패예요. 김두한을 검색하면 가죽 손가락 장갑을 낀 사진이 제일 먼저 검색돼요. 가죽 손가락 장갑은 폭력을 상징하는 거죠. 만약 김두한이 귀여운 털 벙어리장갑을 꼈다? 그럼 전혀 가학적이지 않죠.

나: 아니죠. 벙어리 장갑이 더 가학적이에요. 이 권투 글러브 사진 보시죠. 권투 하면 뭐다? 이 글러브다. 이 글러브 상징 자체가 너무 폭력적이에요. 이 벙어리 글러브로 상대방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거죠. 원투~원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곽: 인정할 수 없습니다. 권투의 기본은 방어에요. 때리는 게 아니라 가드를 올려서 자신을 보호하는 거죠.

나: 권투라는 게 한 명은 무조건 때리고, 한 명은 방어하는 거죠. 둘 다 가드를 올리면 게임이 되나요? 가만히 서 있다가 경기가 끝날 것 같은데요.

곽: 권투의 기본은 방어라니까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손가락 장갑은 방어가 안 돼요. 벙어리 장갑은 장갑 속에서 주먹을 쥐고 있어도 아무도 몰라요. 누가 나를 때리려고 달려들 때, 미리 준비해 둔 주먹으로 방어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손가락 장갑은 내가 주먹을 쥐면 너무 티가 나니까 방어가 안 돼요.

나: 그렇죠. 벙어리 장갑은 장갑 속에서 손으로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아요. 그게 바로 약점이죠. 바로 내가 '능멸' 당한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소개팅에서 상대방이 나한테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는데, 벙어리 장갑을 껴서 그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봅시다. 나는 그걸 모르고 상대방한테 애프터 신청을 했다면 상처받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주방용 장갑의 보온성 vs 스키 장갑의 내구성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곽: 다 필요 없고, 장갑은 따뜻해야 해요. 자 이 주방용 장갑을 보세요. 뜨거운 라면냄비 들 때 이 장갑 사용하죠? 만약 손가락 장갑이 더 보온이 잘 된다면 주방 장갑이 손가락 모양이었겠죠. 인정합니까?

나: 아닌데요. 우리 집은 주방용 장갑이 손가락 장갑이에요. 김치찌개 냄비 들 때 스키장 장갑 써요. 이 장갑은 주방 장갑처럼 타지도 않고, 손가락이라서 편하기까지 해요.

곽: 그런데 손가락 장갑은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가 없어요. 다들 엄마의 요리와 엄마의 사랑을 떠올릴 때 이 주방용 벙어리 장갑을 떠올려요. 스키 장갑 떠올리는 사람, 과연 있을까요?

나: 그게 장점이에요. 스키 장갑으로 라면냄비를 들 때면, 마치 내가 스키장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요. 스키장에 가는 경험을 대리만족할 수 있는거죠. 스키장 가려면 돈 많이 들죠? 대신 이 스키 장갑 하나면 그 경험이 내게 되는 거죠.

곽: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에요. 스키 장갑, 보온 효과 있죠. 그런데 스키 장갑은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어요. 스키 장갑은 뭐다? 마르크스의 계급사회다, 이겁니다.

나: 스키 장갑 싼데요? 네이버에 최저가격 검색하면 7000원이에요.

곽: 배송비는요? 주방 장갑은 다이소에서 1000원이면 사요.

나: 스키 장갑은 대신 내구성이 훨씬 좋아요. 더 오래 쓰기도 하고요.

◇현장 근로자 '산타할아버지'의 고충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곽: 결정적 자료를 내보일 때가 왔군요. 이 분 누구죠? 산타할아버지예요. 산타할아버지 손을 보세요. 뭘 꼈죠? 벙어리 장갑이에요. 더 따뜻하니까 손가락 장갑 대신 이걸 낀 거에요. 산타할아버지는 다 알고 계시거든요. 뭐가 더 따뜻한지. 덜 따뜻한지.

나: 산타할아버지가 온도학 박사 학위가 있나요? 산타할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알죠? 대한민국은 학위 공화국이에요. 학위가 없으면 발언에 신뢰가 없습니다.

곽: 산타할아버지는 다 안다니까요. 뭐가 더 따뜻한지.

나: 산타할아버지는 누가 착한 애고, 누가 나쁜 앤지 이것만 알거든요. 그리고 저는 곽진산 기자 같은 사람 때문에 산타할아버지가 고통받는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산타할아버지 손가락 장갑 끼고 싶을거에요. 그런데 산타할아버지는 벙어리 장갑만 낀다는 편견을 고집하는 사람들 때문에 편하고 따뜻한 손가락 장갑을 포기하는 거죠. 이거 현장 근로자에 대한 복장 강요이자 폭력입니다.

곽: 아니에요. 산타는 손이 따뜻하지 않고서는 굴뚝에 선물을 넣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따뜻한 벙어리 장갑을 일부러 선택한 거예요.

나: 아니죠. 이제 산타할아버지도 복장의 자유를 누려야 해요. 방수되면서 보온도 되고, 색깔도 빨간 고무 장갑을 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곽: 나경연기자가 설거지 안 해봤나 본데요, 고무 장갑 보온 안 돼요. 손 시려요.

◇ 벙어리 장갑 명칭, 손모아 장갑·엄지 장갑으로 바뀌어야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나: 겨울에 국화빵 먹어봤죠? 집게손가락으로 야무지게 집어서 먹는 맛이에요. 그런데 벙어리 장갑은 어떻게 국화빵을 집나요?

곽: 벙어리 장갑도 집게 기능이 있어요.

나: 벙어리 장갑은 뚱뚱해서 국화빵 봉지에 손 넣으면, 종이봉투가 쉽게 터져요.

곽: 일단 전제부터 잘못됐네요. 국화빵은 털어먹는 거예요. 손으로 집어 먹는 게 아니죠.

나: 많이 뜨거울 텐데? 국화빵 털어먹다가 팥에 혀가 다 데일 텐데요. 또 하실 말씀 있나요?

곽: 벙어리 장갑. 이름 잘못됐습니다.

나: 갑자기?

곽: 벙어리 장갑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표현이에요. 손모아 장갑, 엄지 장갑 이라고 써야합니다.

나: 지금까지 벙어리 장갑이라고 하셨는데요?

곽: 그러니까요. 바꿔야 한다고요. 이제부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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