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김정은 환영”은 표현의 자유겠지만

입력 2018-12-11 18:23 수정 2018-12-1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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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유학을 위해 독일에 처음 갔을 때, 나에게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바로 독일의 이념의 자유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일에 갔던 젊디젊은 한국의 유학생에게 서점가에 아무렇지 않게 꽂혀 있던 마르크스와 네오마르크시즘에 관한 서적들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독일에서도 금기시되는 것이 있다. 바로 나치에 관한 것이다. 독일에서는 나치 문양의 사용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고,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한 손을 번쩍 드는 행위는 처벌을 받는다. 이는 나치 정권의 폐해와 범죄 그리고 나치에 의해 희생된 이들에 대해 국가가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반성이라 할 수 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김정은의 답방을 앞두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남갈등 양상 때문이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 “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열렬한 팬입니다”를 외치면서 김정은의 답방을 “위인 맞이”로 표현한 사건을 두고 각종 의견이 난무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공산당을 좋아하든, 김정은을 좋아하든 그것은 문자 그대로 개인적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게 있다. 북한은 과거 엄청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을 일으켰고, 그 이후에도 무장공비 침투를 비롯해 최근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각종 도발을 통해 무고한 장병들과 민간인들의 생명을 앗아간 집단이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북한에는 송환되지 못한 국군포로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고, 전쟁 납북자들과 정전 후 납북자들 역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북한에 의해 자행된 각종 도발과 전쟁 그리고 납치 행위에 의한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의 입장을 먼저 살피는 것이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들 유족들과 희생자들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한 프로세스로서의 김정은 답방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물론 한반도의 평화는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 평화가 위기에 빠진 이유는 남북 간의 긴장 때문이 아니라 미국과 북한 사이의 긴장 때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긴장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 평화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과 북한이다.

우리가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미국과 북한을 중재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양쪽의 입장을 균형감 있게 반영해야 하는데, 미국은 우리에게 속도 조절을 원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다는 측면에서 김정은의 답방이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사안을 단순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이 자신의 핵시설 리스트를 가지고 우리나라에 온다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기에 하는 말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대의를 위해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짚을 것은 짚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 정권은 적폐청산을 주장하고 있다. 과거를 제대로 짚지 않고 미래를 말하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니라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북한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즉, 북한의 과거 역시 제대로 짚어야만 바람직한 한반도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만일 북한의 과거 만행에 대해 침묵한다면 이는 ‘선별적 적폐청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과거는 작위적 기준에 의해 선별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대상이 아니다. 잘못된 과거가 있다면 그 주체가 누구든 제대로 짚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지금 김정은 답방을 둘러싸고 별별 얘기가 나오는 것을 단순한 표현의 자유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양심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과거를 덮고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 것은 옳은 접근이 아니라는 말이다. 독일 사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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