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일본취업박람회 꽉 채운 취준생들…“문송이라 갈 곳 없어요…원하는 곳이요? 합격시켜주는 기업이죠”

▲12일 열린 '2018 일본정보박람회' 강연관에는 일본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몰려,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마치 노량진의 스타강사 수업 시간을 방불케하는 모습이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문과여서 죄송한 '문송'이라 취업할 곳이 없다."

13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근처에서 열린 '2018 일본 정보박람회'에는 취업을 앞둔 졸업예정자들이 유독 많았다. 눈이 소나기처럼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박람회장은 일본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박람회장은 크게 '강연관'과 '컨설팅관', '홍보관'으로 구성됐다. 사람들은 강연관에서 일본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과 일본 조직문화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컨설팅관에서는 일본의 비즈니스 매너 수업이, 홍보관에서는 1대 1 멘토링 첨삭이 진행됐다. 강연장은 빈자리가 없이 빼곡했고, 열심히 필기하면서 강의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노량진 공무원 학원의 수업 현장을 연상케 했다.

경제학과를 전공했다는 이모(27) 씨는 "경제학과라고 하면 있어 보이지만, 막상 취업할 곳이 별로 없다"면서 "문과는 취업이 어렵기 때문에 일본으로 넘어가서 일본 IT 전문대학교에 다시 진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뉴스를 보니까 일본은 취업 상황이 좋다고 해서 일본을 선택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해외 취업을 위해 박람회장에 찾은 사람 중에는 문과생뿐 아니라 공대생도 여럿 있었다. 이날 아침 대구에서 올라온 화공과 학생 김모(25) 씨는 공대생이라고 다 취업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IT 관련 학과나 전자·전기·기계 쪽 학과가 취업에 훨씬 유리하다"면서 "공대를 다니고 있지만, 전공을 IT 관련 학과로 바꿔 일본 현지 취업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박람회는 사전신청자 예약을 받았지만, 뒤늦게 박람회 정보를 알고 방문한 뒤 현장에서 접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문·이과를 가리지 않고 일본 취업에 눈을 돌리는 이유는 국내 취업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발표에 따르면 올해 10월 국내 취업자 수는 2709만 명, 실업자 수는 97만3000명이다. 실업자 수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110만 8000명을 기록한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전체 실업률은 3.5%로, 2005년 3.6%를 기록한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다.

반면, 일본의 10월 취업자 수는 6725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4만 명 늘었다. 일본 내 취업자 수는 70개월 연속 증가를 기록하고 있으며, 실업자 수는 101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일본의 전체 실업률은 2.4%로 25년 만에 최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청년실업률에서 한국과 일본의 간극이 크게 벌어진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25∼29세 청년실업률은 한국이 9.5%로 일본(4.1%)의 2배를 넘는다. 20∼24세 실업률을 살펴보면 한국이 10.9%, 일본이 4.7%다.

이 같은 차이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대기업·종소기업 간 임금 격차 때문이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와 한국은행 김남주·장근호 부연구위원이 이달 발표한 'BOK경제연구 한국과 일본의 청년실업 비교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청년실업률이 크게 높은 것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기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에 입사하게 될 경우, 대기업 입사자와의 소득이 갈수록 벌어지는 구조다. 이 때문에 구직 기간이 늘어나더라도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 국내 50인 미만 중소기업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55% 수준에 불과하지만, 일본 대졸 초임의 경우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 임금의 90%를 웃돈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루저'로 불리고, 결혼하기도 힘들다." 현장에서 만난 한 취준생은 이렇게 푸념했다.

박람회장을 찾은 취준생들은 일본 취업의 가장 큰 매력을 높은 초임으로 꼽았다. 컴퓨터공학이 전공이라는 심모(24) 씨는 "전공 때문에 자연스럽게 컴퓨터 산업에 강한 일본을 생각하게 됐다"면서 "국내 IT 관련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인 최저 임금 수준이라, 초임이 높은 일본 취업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방문을 앞두고 박람회를 방문한 사회복지행정학과 학생 김모(21) 씨는 "조만간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사회복지 시설을 방문할 계획이어서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박람회에 왔다"고 했다. 그는 "일본의 사회복지 시스템은 한국보다 선진화돼 있고, 처우도 훨씬 좋아서 기회가 되면 전공을 살려 일본에 취업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일본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매년 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통계에 따르면 작년 일본에 취업한 한국인 수는 5만5926명이다.다. 이는 2012년 3만1780명에 비하면 76%가 증가한 수치고, 최근 3년 동안 매년 10%대 증가율을 보인다. 이런 인기를 증명하듯 지난달 5일과 7일 부산과 서울에서 각각 열린 '2018 일본취업박람회'에는 취준생이 대거 몰렸고, 소프트뱅크와 닛산자동차 등 일본 유명 기업 112곳이 참석했다.

▲1대 1 멘토링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은 하나라도 더 질문하기 위해 미리 질문 목록을 작성해두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나경연 기자 contest@)

사람들은 모든 강연이 끝나자 1대 1 멘토링을 받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팸플릿에 질문거리를 미리 메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성신여자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이모(27) 씨는 원하는 일본 기업이 따로 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는 곳이요? 저를 합격시켜주는 기업이 제가 원하는 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