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산업은행이란 이름의 콜로세움

입력 2018-12-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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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산 금융부 기자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은 ‘권력’의 산물이다. 콜로세움은 주로 ‘노예’나 ‘전쟁 포로’인 검투사가 각자의 생과 사를 걸고 싸우는 공간으로 쓰였다. 신도들을 학살하는 종교 박해의 장소이기도 했다. 시민들은 이런 피 튀기는 모습을 환호했다. 로마 정치가들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는 데 콜로세움을 이용했다. 다만 콜로세움 한가운데에선 ‘힘’없는 이들이 나약하게 쓰러져야 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이 하나의 큰 유산이 된 이면에는 그들의 희생이 숨겨 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여의도에 이와 유사한 웅장한 건축물이 있다. KDB산업은행. 이 건물은 널찍하고 높게 솟은 로비가 유명하다. 사무실이 로비를 둘러싸고 있어 각 층에서 로비를 내려다볼 수 있다. 유홍준 교수는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이러한 구조를 ‘밥상머리 사옥’으로 직원들의 유대감 형성에 좋다고 했다. 영국 런던의 금융회사 ‘로이드’와 미국의 ‘애플’ 사옥이 대표적이다. 다만 가운데 공간을 비워야 해 금전적으로 부담인 건 사실이다. 한국에선 산은을 ‘신의 직장’이라고 부른다. 신이 다니는 곳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최근 며칠간 이 로비가 시끄러웠다. 산은의 비정규직 파견·용역 노동자가 농성을 벌였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정부 정책에 따라 산은은 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했다. 산은은 자회사를 통해 하겠다고 했다. 이에 노동자들이 반발했다. 자회사를 통한 전환은 “이름만 달라지는 것”이라고, 로비 한가운데서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직원들도 나와 이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다 조용히 지나갔다.

가운데 선 이들은 산은의 정규직보다 월급도, 처우도 형편없다. 하지만 산은이 운영되기 위해선 그들의 노동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를 산은은 외면했다. 산은 노조도 침묵했다. 산은이 콜로세움과 닮았다는 것은 과한 비유가 아닌 듯하다. 로마 시민의 유희를 위해, 또 정치가의 위세를 위해, 검투사의 희생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2018년 12월 14일 산은은 보도자료를 내고 “정규직 전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제 산은은 ‘비정규직 제로’의 시대를 연 것일까? 또 하나의 잔인한 유산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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