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조의 생각] 인공지능이 일깨운 이념적 규제의 허점

입력 2018-12-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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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교수

최근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 ‘에드먼드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2500달러(약 5억 원)에 낙찰되었다. 같은 경매에서 앤디 워홀의 작품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팔린 것이다. 알파고처럼 바둑 두고, 구글 웨이모처럼 자동차를 운전할 뿐만 아니라, 이제 인공지능이 예술가처럼 그림까지 그리게 되었다.

지금까지 예술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인간만의 특유한 정신활동으로 이해돼왔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예술까지 할 수 있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가는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이 운전기사나 예술가를 대체할 뿐만 아니라 결국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종말론’도 있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가 ‘호모데우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신종인간과 그렇지 않은 토종인간의 대립과 갈등이 미래 세상의 모습이고 풀어야 할 과제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인공지능이 바둑 두고 그림 그리는 것은 모두 동일한 작업일 수도 있다. 인간이 만든 규칙을 학습하고, 인간이 만든 바둑기보, 명화 등에서 통계적으로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고, 그 패턴에 따라 승률이 높은 수를 예측하고 화풍에 따른 선과 색깔을 예측한다는 점에서 바둑이나 그림이나 똑같은 작업이다. 문제는 그 데이터에 오류가 있거나 편견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 인공지능이 그리는 그림이나 예측하는 결과에 오류나 편견이 그대로 반영되고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청와대 본관에는 임모 작가가 광화문광장 촛불시위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그의 그림만 학습하면 인공지능은 그러한 화풍의 그림만 그리게 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가 필요 없다. 선거에서 승리한 집권자의 머릿속에 있는 화이트리스트에 따라서 낙하산 인사, 코드 인사를 하고, 인공지능이 집권자 코드에 부합되는 데이터만 학습하면, 그 인공지능은 그 코드에 딱 들어맞는 그림만 그리고 코드에 맞는 판단과 예측을 하게 된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이념 코드에 따라 예술계와 과학계 수장을 마구 바꾸는 것이 위험하다고 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계의 블랙리스트나 집권자의 머릿속에 있는 화이트리스트나 똑같이 위험하다.

미국은 1960~1970년대 의식주가 풍족한 풍요로운 사회를 구가했는데, 21세기의 실리콘 밸리는 희소성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전에는 작가의 수개월간 고민과 작업 끝에 그림과 음악이 완성됐지만, 실리콘 밸리의 인공지능은 수초 만에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뉴스 기사를 완성한다.

토종 예술가의 작품에는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그 작품이 비싸고 저작권에 의해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신종 예술가 또는 신종기업이 만들어내는 그림이나 음악은 순식간에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희소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저작권이나 소유권제도,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고 대수술을 해야 할지 모른다. 애덤 스미스의 자본주의 경제학 이론은 희소성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그 희소성이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라리가 ‘호모데우스’에서 말한 토종인간과 인공지능 신종인간의 갈등으로 돌아가 보자. 문재인 정부의 소득 재분배 정책은 좋지만, 인공지능 신종인간의 탄생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오산이다. 각종 규제로 기업들의 투자와 혁신을 억제하고 있는 동안, 순식간에 중국의 인공지능으로 무장된 신종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밀려 들어오고, 서양의 인공지능 신종 예술가들이 토종 예술가들을 몰아낼 것이다.

크리스티 경매에서의 인공지능 그림은 우리 집권층에게 말한다. 19세기 이념적 규제보다는 21세기 희소성 종말의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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